간호법 정면충돌…"의료체계 혼란" vs "역할 새롭게 규정"

국회 본회의 직회부로 격화…필수의료 강화 협의까지 올스톱
의협 등 "입법 과잉, 이기주의"…간협 "달라진 환경 반영 못해"

대한간호협회(위)와 대한의사협회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맞은편에서 각각 간호법 제정 촉구-제정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3.2.9/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처우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데 대해 의료계의 해묵은 갈등은 격해지고 있다. 국외 입법사례에 대한 진실 공방, 입법 절차와 관련한 정치권 공방으로까지 번졌다.

대한의사협회 등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려는 13개 보건의료 단체는 "이 법이 국내 보건의료 체계를 흔들고 직역 갈등을 부추긴다"고 주장하고, 대한간호협회는 보건의료 환경과 간호 서비스 영역 변화에 따라 간호법 제정을 미룰 수 없다며 반박한다.

양측이 타협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 정치권과 정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 대안을 찾을 수는 없을지 주목된다. 분명한 점은 이번 갈등으로 인해 의료계 협조 체제가 깨졌고 자칫 총파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열린 '간호법·의료인면허법 강행처리 규탄 총궐기대회'에 참가한 의료단체 회장들이 간호법안 폐기를 촉구하는 삭발식을 하고 있다. 2023.2.26/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갈등 격화…각 직역 입장에 맞춰 주장 쏟아내는 데 여념없어

그동안 국내 보건의료 체계와 제도는 의료법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의료법 2조에는 의사의 업무를 의료와 보건지도,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정의하고 있다.

의사를 의료 행위의 주체, 간호사는 그를 돕는 진료 보조자로 규정한 셈인데 간호계는 간호 업무범위가 '진료 보조'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반박해왔다. 기록상 간호법 제정 노력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77년일 정도로 간호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17대 국회(2005년)와 20대 국회(2019년) 때 발의 법안은 의협 등의 반대로 무산됐으며 지금은 2021년 서정숙·최연숙 국민의힘 의원,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3인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을 합친 대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 있다.

간호법의 쟁점은 "간호사들이 독자적으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작됐다. 의협 등은 간호사가 독자적 방문 처치 등 업무범위를 넓혀 의료체계에 큰 혼란을 줄 거라고 주장했다.

조율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에는 현행 의료법 문구와 거의 유사한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바뀌어 갈등 요소가 잡힌 듯싶지만 의협 등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간호법 총칙에 있는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이라는 표현이 남아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의료법 자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의협 등은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처우개선 등을 별도로 규정할 게 아니라 간호계의 요구사항을 의료법 등의 개정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간호법 제정 자체가 입법 과잉이자 간호사들의 이기주의, 직역 간 갈등 소재라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간호조무사는 간호법의 간호사 업무 영역인 '간호사가 수행하는 업무 보조에 대한 지도'가 간호사가 간호조무사를 지휘하려는 의도라고, 임상병리사 등 의료기사 단체는 자신들 직역을 간호사가 침범할 수 있다고 각각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간호계는 현행 의료법이 급속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경제 수준 등으로 달라진 보건의료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건강관리 영역이 바뀌고 간호 서비스 영역이 확대되는 만큼 간호사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2.9/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법 보유국 수 놓고도 신경전, 정치권 공방도…필수 의료에만 차질

간협은 간호법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3개국 등 세계 96개국에서 별도로 제정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의협은 간협이 유럽국가간호연맹(EPN)의 26개국을 한데 묶어 법 적용이 되는 것처럼 일괄 계산했다고 비판했다.

간협은 별도의 간호법 형식보다 간호사의 업무와 책임을 규율하고 있는지를 기준 삼아 유럽 EPN 26개국이 유럽연합(EU) 의회의 통합 간호 지침을 준수한다는 이유로 간호법 보유국으로 분류했다.

의협은 간호법이 다른 의료법에서 완전히 분리된 단독 법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따지고 하위 법령 형태라면 간호법 보유국에서 제외했다. 각자 상대측 근거를 폄훼하는데 몰두하고 있는 셈이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은 본회의 부의 요구를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여·야 대표가 합의해 부의 여부를 정해야 한다. 여야가 다음달 9일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간호법 제정안은 이후 첫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진다.

야당이 단독 처리에 나설 수 있으니 여당은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 건의를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의협 등 13개 단체는 투쟁 수위를 높여 총파업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간호법 제정으로 촉발된 의료계 반발은 필수 의료 지원 강화를 협의하려던 정부와 의사협회 간 협상 테이블에 불똥이 튀었고, 향후 과정은 험로가 불가피할 예정이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