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동성커플의 사랑, '사실혼' 인정 받는 날 올까
- 한병찬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지난 21일 동성 커플에게 국민건강보험(건보) 직장가입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비록 사실혼 관계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성소수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첫발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누구보다 성소수자들이 이번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기자는 마침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재학 중인 성소수자 3명을 취재했다. 이들 역시 "올해 최고의 디딤돌 판결"이라고 환영하면서도 '2%'의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먼저 평가할 만한 대목은 '평등의 원칙'을 적용한 점이라고 한다. 재판부는 동성 결합이 이성간 사실혼 부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달리 판단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시했다.
지난해 1월 1심 재판부가 이성과 동성의 결합을 달리 취급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결론 낸 것과 차이가 있다.
사실관계나 법리적 해석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서 '소수자'를 판결문에 적시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재판부는 "누구나 어떤 면에서 소수자일 수 있고 소수자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며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요컨대 동성 커플은 물론 소수자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다.
그런데도 성소수자들이 '2%'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법원이 동성부부 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하는 것에 유보적인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1997년 '혼인은 1남1녀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례(95헌가6 결정)에 근거한 것이다. 하급심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뒤집기는 어려워 우회적으로 사실혼 관계를 인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은 '분명한 인정'이 아닌 '우회적 인정'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동성 애인이 있는 로스쿨생 이모씨는 "기존 판례가 얼마나 동성 부부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34개국이 현재 동성 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국가가 늘고 있으며 2019년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법원의 판단은 그 시대상을 나타낸다. 앞서나갈 때도 있고 뒤처질 때도 있지만 사회가 대체로 합의한 수준을 근거로 판결한다. 엄혹했던 독재 시절엔 인권을 배제한 판결이 대세를 차지해 많은 소수자를 절망에 빠트렸다.
법원의 동성커플 '건보 인정'이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웠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다수결을 따르지만 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했을 때 가장 큰 가치를 발현한다. 이 때문에 법원의 이번 판결문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단어는 '소수자'였다.
성소수자들이 언급한 '2%의 부족함'이 채워질 날도 오게 될까. 요즘 유행 말인 '사랑 is 뭔들'은 '사랑이 있다면 뭔들 못할까'라는 뜻인데 성소수자들은 사랑이 차별과 혐오를 이긴다고 믿고 있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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