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는 지금]③ 작은 실천 모아 민주화 열망으로…희망의 연대
암투병 아버지 두고 떠나온 딸…"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연대와 지지의 손길…"관심은 줄었지만 포기할 수 없어"
- 박상휘 기자, 박동해 기자, 박혜연 기자, 이정후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박동해 박혜연 이정후 기자 = "미얀마에 계신 아버지가 지난달에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한국으로 오기 전 '아버지를 보는 게 마지막일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마지막이 돼버렸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 유학길에 오른 미얀마인 김소연씨(한국 이름)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너진 민주주의는 한 가족도 갈라놓았다.
김씨는 2020년 11월 총선에서 첫 투표를 경험했다. 그의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긴 군부독재의 역사를 가진 미얀마였던 만큼 기대감도 높았다. 하지만 투표 결과를 거부한 군부의 쿠데타로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산산조각이 났다. 미얀마 청년들은 분노했고 김씨도 그 중 하나였다.
한국어를 배웠던 김씨는 주미얀마 한국대사관 앞을 찾아가 무릎을 꿇으며 한국어로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지만 대사관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다만 해당 영상은 국내 SNS에 소개되며 한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한국에 온 이유로 "미얀마에 있으면 기부도 못 하지만 한국에 있으면 돈을 벌어서 시민방위군(PDF)을 도울 수도 있고 국내 소식을 해외에 알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선뜻 김씨의 뜻을 응원해줬다.
김씨는 현재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이다. 주로 미얀마 난민과 민주화 활동 소식을 한국어로 번역한다. 김씨는 "쿠데타 전에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봤는데 미얀마에 8888혁명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는 5·18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영화로 봤던 게 미얀마에서 실제로 일어나게 되니 '민주화라는 건 쉽지 않구나, 나라마다 어렵게 얻어내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미얀마 대학 친구들은 군부가 열어준 학교라는 이유로 졸업도 뒤로 한 채 시민방위군에 합류하거나 군부의 눈을 피해 소규모로 민주화운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학교를 졸업하면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일단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다. 그는 "한국 분들이 미얀마를 위해 여러 활동을 해주고 계시지만 관심이 식어가는 게 느껴져서 아쉽다"며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 한국 내 민주화 활동도 탄압…현지 가족 위협하는 군부
한국 내 미얀마인들은 익숙지 않은 언어와 문화 속에서 어렵게 생계 활동을 하면서도 고국의 민주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끊임없이 촉구해왔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의 감시 범위가 확장되면서 현지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그마저 위축돼가는 것이 현실이다.
경남 창원역에서 주기적으로 열리던 '미얀마 민주주의연대 일요시위'는 오는 18일을 끝으로 중단된다. 시위에 참여하는 미얀마인들의 현지 가족들에게 군부가 찾아와 위협을 가하는 일이 발생하자 시위 주최 측 임원진이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남궁희수 경남이주민센터 기획실장은 "국내뿐 아니라 현지에서도 생방송으로 시위 현장을 송출하는데 얼굴이 노출됐다"며 "군인 100명 정도가 현지에 있는 가족들을 찾아와서 사진을 보여주면서 위협을 했다고 하더라. 다행히 상황을 모면하긴 했지만 불안해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다"고 설명했다.
남궁 실장은 "여기에서 일하시는 노동자 분들은 인도적 체류 중이라고 하지만 미얀마로 돌아가야 하는데 (군부의 위협이) 염려가 돼서 모금운동에 집중하자는 게 미얀마 교민들의 의견"이라며 "최근에는 시위 동원률이 떨어지기도 했다. 많을 때는 200명도 모였고 보통 50명 이상 꾸준히 모였는데 지금은 30명 정도"라고 밝혔다.
미얀마 군부의 감시 눈길은 한국에도 뻗쳐 있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있는 주한 미얀마대사관 무관부가 그 중심에 있다. 국내 미얀마 민주화 활동가들은 군부가 파견된 이곳이 일종의 '영사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페이스북으로 미얀마 현지 소식을 전하는 '미얀마투데이' 운영자 최진배씨(35)는 "(무관부에서) 주로 하는 것이 우리나라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얀마인들을 감시하는 일"이라며 "집회 현장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거나 시민방위군(PDF) 등 무장단체에 돈을 크게 기부하는 사람들이 가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머지 않아 '미얀마 현지에 있는 가족들이 다쳤다더라', '집이 압류당했다더라', 아니면 '그 지역 일대를 다 군부 병력들이 와서 들쑤시고 갔다더라' 이런 얘기들이 많이 들린다"며 "실제로 가족들이 다치는 모습들을 보다 보니까 (활동이) 조금 위축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멀어지는 관심과 지원…그럼에도 불러보는 '희망 찬가'
최씨는 미얀마인과 결혼하면서 미얀마 상황에 관심을 갖고 지원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미얀마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과 친구들이 군부에 체포되거나 부상을 당해 장애를 얻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때면 고통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군부가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국제사회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알다 보니까 되게 막 나가고 있다. 사람들도 많이 죽이고 불법 체포도 많이 이뤄진다"며 "폭력과 인권 유린 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다른 뉴스에 밀려) 상대적으로 묻혀버리니까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모금 액수도 줄었다. 작년에는 한 달에 3~4개 단체에 후원을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두 달에 한 번도 지원하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최씨가 직접 시간과 품을 들여 후원 활동을 하고 미얀마 현지 소식을 번역해 SNS에 올리는 이유는 "이렇게 묻히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씨는 "이런 활동을 해서 효과를 많이 본다면 보람이라든가 계속할 유인이 생기는데 그런 게 워낙 적어서 안타깝다"면서도 "그런데 포기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것마저도 안 해버리면 정말 미얀마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전달이 안 된다"고 했다.
미얀마돕기 시민모임에서 활동하는 정용(가명,55)씨 역시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냥 ‘남일’ 같지 않았다. 정씨는 “내가 미얀마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나도 저기 나가서 그렇게 시위를 하다가 피를 흘리고 총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작은 마음이라도 실천으로 옮기자는 마음으로 지인들과 미얀마 지원모임을 결성했다. 광화문 거리로 나가 유엔 평화유지군 미얀마 파병 요구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한미일 3국 차원에서 미얀마의 망명 정부인 민족통합정부(NUG)를 미얀마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달 19일에는 미얀마대사관까지 3보1배 행진을 하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정씨는 "독립운동도 유관순 열사, 김구 선생님 다 한분 한분이 뜻을 가지고 하신 작은 행동이 모여서 이뤄졌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도 뜻 있는 분들이 나서면서 그 뜻이 모여진 것"이라며 "내 작은 행동도 디딤돌이 돼서 큰 불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그동안 미얀마 민주화를 많이 지지하고 응원해주고 미얀마 시민분들 편에서 같이 공감해주는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에 미얀마가 불법 쿠데타 군부 세력에 의해 점령되지 않고 끝까지 작은 농촌에서도 반대시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며 "그동안에 했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 미얀마를 위한 민주화 물결로 진행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sanghwi@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미얀마 문민정부가 군부의 쿠데타로 무너진 지 1년 10개월이 지나갑니다. 지구촌 한 편에서는 월드컵이라는 최대 축제가 펼쳐지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미얀마 시민들은 지금도 군부의 총칼에 사망하고 있습니다. 뉴스1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희망하며 미얀마의 현 상황을 조명하고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획물 3편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