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꿈꾸던 보육원 출신 20대 청년은 왜 생을 포기해야 했을까
[스물넷 청년의 죽음②] 학대당하다 보호종료…직업학교서 희망찾았지만
정규직 꿈꾸며 이직, 손에는 한달짜리 계약서…안타까운 극단선택 이유는
-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지난 5월13일 강화도 펜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백동민씨(가명·24)는 충북 제천의 한 보육원에서 자랐다.(관련기사: 스물넷 청년의 죽음①) 동민씨와 같은 보육원 출신의 친구들은 어렸을 적 동민씨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잘 웃고, 성실하고,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는 묘사와 함께 "많이 맞았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동민이도 많이 맞았어요. 힘들었을 거예요". 동민씨와 같은 또래로 보육원에서 자랐던 백세봄씨(가명·24·여)는 보육원을 '지옥'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사실 동민씨와 친구들이 자란 보육원에서는 지난 2013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내부 직원의 제보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 조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보육원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지속해서 체벌과 가혹행위 한 것이 드러났다. 특히 보육원 교사들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마늘을 먹이거나 '타임아웃방'이라고 불리는 1.5평 크기의 독방에 가두기도 했다. (학대사건 관련 인권위 결정문)
◇학대와 부적응하지만 열심히 살고 싶었던 청년
인권위는 학대 교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보육원에는 피의자들을 징계할 것을 권고했다. 또 제천시장에게도 후속 조치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보육원은 학대가 없었다고 반발했다. 오히려 보육원은 학대 사실을 폭로한 직원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내부 징계를 하기도 했다.
제천시는 해당 보육원 이사회에 시설장을 교체하라고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보육원은 역시 학대 사실이 없었다고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5년여간의 재판 결과 보육원에 대한 행정처분이 정당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자체적으로 사건을 조사했던 시민단체들은 인권위 발표 이후에도 보육원이 아이들에 대한 괴롭힘을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이들이 직접 나서 보육원 후원의 날 행사 때 후원자들에게 학대 사실을 알리는 팻말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학대 사건이 논란이 되자 보육원에 있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는 보육원에 남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다른 보육시설이나 그룹홈 등으로 옮겨졌다. 몇몇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거나 범죄로 빠지기도 했다. 동민씨의 경우에도 이때 인근의 그룹홈으로 들어가 생활을 하게 됐지만 쉽게 적응을 하지는 못했다.
주변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동민씨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그리고 만 18세를 넘겨 '보호종료아동'이 된 이후 동민씨는 지인들의 집에 얹혀 지내면서 고정적으로 지낼 곳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생활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한 친구 백민경씨(가명·24·여)의 소개로 동민씨는 2016년 초 한국소년보호협회가 운영하는 화성청소년창업지원비전센터(비전센터)에 입소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비전센터는 보통 범죄전력이 있는 소년원 출신의 청소년들에게 직업 교육을 시켜주는 곳이었지만 동민씨는 범죄 전력이 없음에도 민경씨의 소개로 만난 보호관찰소 직원의 추천으로 취업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동민씨는 "빨리 취업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주변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냈고 6개월 만에 센터의 추천을 받아 지방의 한 골프장에 취업을 했다. 비전센터 교사들은 동민씨를 '성실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비전센터에서 담임교사였던 최모씨는 동민씨를 '빨리 취업해서 자립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컸던 아이'라고 말했다.
최씨에게 동민씨는 골프장 관리를 하면서 '코스 관리사'로서의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캐디나 골프와 관련된 다른 일도 해보고 싶다며 일에 대한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최씨는 2년 정도 동민씨의 급여도 관리해줬는데 "낭비 없이 절제하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고 말했다.
비전센터 입소를 추천했던 보호관찰소 직원은 동민씨에 대해 "처음에 연락을 받고 상담을 했는데 잘할 것 같고 의지도 있는 것 같아서 비전센터를 연결해 줬다"며 "비전센터를 나온 이후에 진학을 한다고 해서 장학금도 마련해서 전달해 주고 동민이도 고맙다고 안부를 전했다. 선생님들도 잘 케어해 줘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최근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학업에 재능은 없었지만 동민씨는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골프 관련 수업을 듣는 등 열정을 보였다. 힘들었지만 그는 스스로 돈을 벌어 살아갈 수 있게 되자 '더 나은 삶'을 꿈꿨다. 그리고 올해 초 지인을 통해 강화도에 위치한 프로야구 구단 2군 구장 잔디 관리직을 소개받아 자리를 옮겼다.
◇정규직 꿈꾸던 청년…그가 받아든 한달짜리 계약서
동민씨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까지 연락을 주고받던 비전센터 직원 문모씨는 동민씨가 야구장 쪽으로 이직을 하면서 "연봉도 많이 오른다고 자랑할 정도로 좋아했다"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민씨는 회사에 대해 힘든 일이 있다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털어놓기 시작했다. 특히 동민씨는 '함께 숙소를 사용하는 상급자가 술을 자주 먹었는데 술에 취하면 항상 자신을 불러내 대리운전을 시킨다'며 문씨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동민씨는 목숨을 끊기 일주일 전쯤 문씨에게 연락을 해 '우울증 증세가 어떻게 되냐. 제가 우울증인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 경찰이 동민씨의 사후 발견된 휴대전화를 분석한 결과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한달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자살하는 법' 등을 검색하며 준비를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동민씨는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도구들을 구입하고, SNS에서 함께 생을 마감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비전센터에서 동민씨의 담임을 맡았던 최씨는 동민씨의 '꿈'이 새로 옮긴 직장에서 '정규직'이 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는 동민씨가 단순히 '일용직' 근무자였을 뿐이라고 기억했다. 동민씨는 한달 단위로 계약서를 쓰면서 일을 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야구장 관리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현장에 있는 친구가 골프장에 있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식적으로 채용공고를 해서 뽑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동민씨가 직장 동료들에게 대리운전 강요 등 괴롭힘을 받았다는 증언에 대해도 "함께 작업을 하는 두 분이 있었고 직장 내 괴롭힘 이야기는 없었다고 들었다"며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경찰에서 조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동민씨의 신분이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와 다른 게 없다고 말했다. 동민씨는 유서를 비롯해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규직을 꿈꿨지만 한달마다 계약서를 써야 하는 상황에 대해 어떤 심경을 느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장례식 이후 보육원 친구들은 동민씨가 남기고 간 짐들을 정리했다. 회사 기숙사에 남은 짐은 많지 않았지만 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동민씨가 남긴 유품 중 유일하게 활자로 남아 있는 이 책의 제목은 '신경끄기의 기술'였다. 책은 제목만으로도 남아있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떤 고통에서 신경을 끄고 싶었던 것인지 동민씨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그가 혼자서 했을 고민을 책을 통해서 상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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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물넷 청년의 죽음① (https://www.news1.kr/articles/?4374460)
2. 학대사건 관련 인권위 결정문 (https://case.humanrights.go.kr/comfile/fileDownload.do?fileid=2013-01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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