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하철 DJ" 서울지하철에 감성이 터진다

승객에게 위로와 웃음 주는 3인3색 감성방송
방송 전 연습은 필수…이젠 '드립력'도 발산

(서울=뉴스1) 정수영 문영광 기자 = "우리 열차는 긴 지하터널을 지나 햇살 가득한 동작철교를 지나게 됩니다.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으시고 창밖의 구름을 만나보는 건 어떠세요? 근심이나 걱정이 있으시다면 한강물 저 멀리 던져버리셔도 좋습니다."

지난 22일 오후 사당행 열차. 서울교통공사 4호선 승무원 최호 주임(27)은 이촌역에서 동작역으로 향하는 구간서 마이크를 들었다. 이 구간은 "길이도 길고 어두운 지하에서 밖으로 나가는 지점이라 방송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최 주임은 설명했다.

◇ 지친 승객 위해 방송에 유머 한 스푼 : 최호 주임은 감성 안내방송을 하는 승무원으로, 센추리클럽의 18번째 회원이다. 센추리클럽은 승객들로부터 100건 이상의 칭찬 민원을 받은 승무원들의 모임. 서울교통공사가 감성방송을 독려하기 위해 2018년 8월 만들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승무원 2740명 가운데 이 클럽의 회원은 현재 총 20명이다.

최호 주임은 한 남자아이가 자신한테 멋지다며 '쌍 따봉'을 날려준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승객의 격려는 감성방송을 지속하는 힘이다.(사진제공=최호)ⓒ 뉴스1

최 주임이 감성방송을 시작한 계기는 뭘까. "작년 7월, 새벽 첫차를 운행하는 일정이었어요. 졸음이 와 잠을 깨려고 방송을 시작했죠. '우리 열차의 시원한 에어컨에 근심 모두 날려버리시고, 오늘 하루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멘트였습니다."

처음 감성방송을 한 그날 칭찬민원이 들어왔다. 그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고 했다. 승객들에게 출근길엔 응원, 퇴근길엔 위로를 배달하고 싶었다. 이심전심. 교통공사 게시판에 칭찬의 글이 쌓여 갔다. 그가 말했다. "제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 "혼자 거울 보며 연습 또 연습" : 지하철 5호선 승무원 양원석 주임(26)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지하철 기관사가 꿈이었다. 취업준비로 몸이 녹초가 된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마음을 다독여주는 방송을 들었다. '나도 승무원이 되면 저렇게 방송을 해봐야지.' 이 취준생은 '꿈의 직장'에 들어와 2년 넘게 감성방송을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센추리클럽의 15번째 회원이 됐다.(사진제공=양원석)ⓒ 뉴스1

방송 주제는 어떻게 정할까. "주제를 따로 정하기보다 제 일상이 다 소재가 돼요. 운전하다 라디오에서 좋은 구절을 들으면 휴대폰에 메모하거나 컴퓨터에 옮겨 적고 저장해 둡니다."

연습도 필수다. 양 주임은 집에서 혼자 거울을 보며 승객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여러 번 읽어본다고 했다. "저는 30초~1분 길이로 준비해요. 방송이 짧고 굵게 나가야지 너무 길어지면 승객들이 지루해 할 수 있거든요." 그가 메시지 분량을 신경 쓰는 이유다.

◇ 그럼에도 지속하는 동력은? : 감성방송 한다고 칭찬만 듣는 건 아니다. 2호선 승무원 유정현 주임(30)은 출근길에 방송을 여러 번 했다는 이유로 '시끄럽다'는 항의민원을 종종 받았다.

그 이후로 유 주임은 승객 표정을 살핀다. "표정이 밝은지 찌뿌듯한지 봐요. 승객들 표정이 밝으면 방송을 많이 해도 되는 날이에요. 하지만 어두우면 그날은 자제하죠."

유 주임은 SNS에서 공감 가는 이야기를 읽으면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둔다고 했다. 센추리클럽의 2번째 회원이다.(사진제공=유정현)ⓒ 뉴스1

처음 방송할 땐 쑥스러워 손발이 오그라들고 얼굴이 빨개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베테랑이 다 됐다. 열차가 지연 됐을 때 "앞 열차 추월하도록 달리겠다"는 '드립력'(애드리브+능력)도 발산할 정도.

때론 시끄럽다고 한소리 들어도 감성방송을 지속하는 힘은 승객들 격려와 칭찬이다. 열차가 신대방역에서 신림역으로 향하는 구간, 유 주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 뉴스1

j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