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미니즘 시대, 총여학생회 쇠퇴…'백래시' or '전환계기'

"총투표실시 등 실력행사로 폐지…여성혐오 증거"
"총학도 후보 없어 쇠퇴…총여 폐지도 그 일환"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소속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금잔디광장에서 열린 '회칙에 따른 총여 선거 촉구 집회 - If Not Now, When?'에서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대표자들의 총여학생회 선거 방해를 규탄하고 총여학생회 선거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대학가 총여학생회들이 사라지거나 존폐 기로에 놓이고 있다.

서울 지역 대학들 중 사실상 유일하게 총여학생회를 운영하고 있었던 동국대학교에서는 14일 총여학생회 폐지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광운대학교에서도 총학생회 존폐 여부를 학생총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앞서 10월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생총투표를 통해 총여학생회 폐지안이 가결된 것을 비롯해 연세대학교에서도 5월 학생총투표로 총여학생회 재개편안을 통과됐다.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로 대학교 안 여성 구성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총여학생회가 전면에 드러나기보다 도리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을 두고 여성단체들은 여성운동에 대한 '백래시'(Backlash,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라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을 대학가에서 쇠퇴하고 있는 학내 정치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시각도 있다. 총여학생회만을 고수하기보다 다른 체제를 고민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대학교 총여학생회, 1990년대 이후 공백기 맞으며 잇딴 폐지

총여학생회는 1984년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처음 생겨난 이후로 1990년대까지 그 수가 점점 늘었다.

하지만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총여학생회를 다른 학내기구로 대체히기로 결정한 것을 시작으로 건국대학교에서는 2011년부터 입후보자가 나오지 않아 2013년 총여학생회가 사라졌다. 2014년과 2015년에는 중앙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서 총여학생회가 각각 사라졌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총여학생회 입후보자가 없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가 2013년 결국 총여학생회가 폐지됐다. 성균관대학교에서도 2009년 이후로 총여학생회장 입후보자가 없어 2012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를 거친 것을 마지막으로 활동이 없었고, 총투표 결과 총여학생회 폐지 안건이 통과됐다.

연세대학교에서도 지난 5월 총여학생회 재개편안을 두고 총투표가 실시됐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서 사실상 폐지 수순을 맞았다.

◇"여성혐오로 인한 백래시…총투표로 무산시키는 실력행사"

이처럼 총여학생회들이 사라지는 현상을 두고 여성단체들은 여성운동에 여성혐오로 인한 '백래시'가 가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성균관대 총투표의 정당성을 문제삼으며 투표를 보이콧한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성성어디가) 측은 "학내에 총여학생회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발언을 많이 들었고, 명백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성혐오가 많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송란희 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학교 안에서 여성운동을 하고 여성의 권익을 실현하는 것들을 반대하는 흐름의 영향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며 "총여학생회를 투표로 무산시키는 실력행사가 나타나고 있는 게 요즘"이라고 말했다.

연세대학교에서도 총여학생회가 페미니스트 은하선씨의 '대학 내 인권활동 그리고 백래시' 교내 강연을 추진하면서 역풍 성격으로 총여학생회 재개편 논의가 시작된 만큼 백래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소속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금잔디광장에서 열린 '회칙에 따른 총여 선거 촉구 집회 - If Not Now, When?'에서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대표자들의 총여학생회 선거 방해를 규탄하고 총여학생회 선거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총학생회도 입후보자 공석…총여학생회도 예외 아냐"

하지만 총여학생회 폐지를 자연스러운 수순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총학생회조차 입후보자가 없어 몇 년째 비대위로 운영되는 대학들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총여학생회도 예외일 수 없다는 시각이다.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는 "총여학생회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총여학생회가 사라지는 건 사실은 관심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몇 년 동안 총학생회 선거에서 단독 후보가 출마하거나 아예 후보자가 나오지 않는 학교도 있는 상황"이라며 "여학생들이 불평등하고 불리한 취업구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총여학생회에 나서기 쉽지 않기도 하다"고 짚었다.

총여학생회가 사라진 학교들 중에서는 총여학생회 공백기가 길었던 학교들도 있는데, 이렇게 존재감이 옅어진 상황에서 총여학생회가 존속해야만 한다는 견해가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견해다. 학생운동이 쇠퇴해가는 단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여학생회 존치만을 고수하기보다 여학생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다른 대안들도 모색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학생활동이 위축되는 건 일단 바람직하지 않지만 총여학생회가 지속되면 '여학생은 총여학생회, 총학생회는 남학생' 구도가 고착될 우려도 있다"며 "총학생회 정·부후보를 다른 성별로 구성하는 등 여성 차별 구조를 바꾸려는 다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송 사무국장은 "총여학생회만 한 강력한 여성 자치기구를 찾기 어려워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총여학생회 준비위원회라든가 비상대책위원회, 학내 여성주의 동아리들이 몇년 전부터 생겨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활성화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총여학생회가 사라진 학교에서는 학교 안에 자치기구 대신에 성평등센터나 성평등위원회를 세우고 있는데 이것들은 피해구제가 주 업무"라며 "학교생활에서 발생하는 성별 관련 문제를 자치기구에서 해결하는 경험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kays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