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권고 12년째…갈 길 먼 대학가 '생리공결제'

생리 여부 확인·남용 문제로 도입 힘들다는 입장도
생리 공결도 여성의 권리라는 사회적 인식 필요해

여대생들이 장미꽃을 들고 걷고 있다. ⓒ News1 최현규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1학년 때 생리통이 심해서 교수님한테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보시더라고요. 병원에 확인 전화도 한다고 하시고요. 그 뒤로는 생리 공결을 사용하기 꺼려져요"

대학 4학년인 A씨(23·여)는 일상 생활이 힘들 정도로 생리통이 심한 편이다. 생리통이 심한 날은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도 곤욕이라는 A씨는 길을 걷다가 쓰러진 경험도 있다. 재학 중인 대학에 생리공결제도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담당 교수의 따가운 눈초리에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A씨는 "생리통이 심한 여학생의 고충을 덜어주는 게 생리공결제도"라며 "악용하는 학생 때문에 의심한다고는 하지만 학교 측에서도 생리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리공결제는 국가인권위가 지난 2006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생리공결제 시행을 권고하면서 시작됐다. 인권위는 “생리로 인해 결석하거나 수업을 받지 못할 경우 출결을 병결이나 병 조퇴로 처리하는 것은 여학생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중등교사의 진정을 토대로 모성 보호 제도마련 차원에서 초·중·고교에 생리 결석제도 시행을 권고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대학가에서도 생리공결제 도입이 시작됐다.

하지만 인권위 권고 12년째인 지금 대학가 생리공결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생리 공결을 인정받기 위한 절차가 까다롭거나 아예 생리공결제도 자체가 없는 학교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리공결제에 대해 모르는 학생도 있었다.

서울의 한 여대에 재학 중인 강모씨(21·여)는 "생리공결제라는 게 있는 줄 몰랐다. 주변 친구들도 모르는 것 같더라"며 "생리통이 심한 편이 아니라 이런 부분에 대해 무지했다"고 말했다.

이어 "생리통이 있더라도 심하지 않은 이상은 참아왔다"며 "여자 입장에서 교수님에게 진단서를 제출 하는 것도 수치스럽고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현재 서울의 6개 여대 중 생리공결제도를 시행 중인 대학은 성신여대와 덕성여대뿐이다. 동덕여대는 한국외대와 함께 이번 학기부터 생리공결제를 도입해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여대에도 생리공결제도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생리 공결을 시행하고 있지 않은 대학들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대학 수업의 자율성과 수업의 질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생리공결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담당 교수의 재량으로 생리 결석을 병결의 일종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리 공결에 관해 학생들과 수차례 논의했지만 시행하지 않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 이대 측의 설명이다.

생리 공결제를 시행했다가 다시 폐지한 대학도 있다. 서강대는 인권위 권고 1년이 지난 2007년 한 학기 시범 도입을 했다가 남용 등 우려로 폐지했다. 서강대 관계자는 "당시 학내 보건소에서 생리 확인을 받아 공결 처리를 하도록 했는데 절차가 까다로워 학교 측에서도 부담이 됐다"며 폐지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생리 여부 확인 절차와 남용 등 문제로 대학교에서도 생리 공결은 쉽게 도입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일부 대학은 생리 공결 특성상 확인 절차가 까다롭다는 것을 수용해 생리 공결을 시행하고 있기도 했다.

지난 2013년 생리 공결제를 도입한 덕성여대는 초기에는 학내 건강증진센터나 병원진단서를 첨부하도록 했지만 이번 학기부터는 첨부 서류 없이 생리 공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단 △학기 당 3번 △시험기간·계절학기 사용 불가능 등 제한을 뒀다.

올해 생리공결을 도입하는 한국외대와 동덕여대도 별도의 증빙서류 없이 신청서를 담당 교수에게 제출하는 방식으로 생리공결제가 시행된다. 한국외대는 총 수업일수의 4분의1까지만 생리공결을 인정하도록 했고 동덕여대는 학기당 4일 이내로 사용하도록 제한을 뒀다. 경희대의 경우는 시험 기간에도 생리 공결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여성의 생리 공결을 하나의 권리로 보는 대학과 사회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대학에도 여학생이 많다. 초·중·고교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인권위나 교육부 차원의 권고나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생리 현상은 곧 임신과도 이어지는 것"이라며 "여성의 모성 보호라는 차원에서도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수업을 마친 여대생들이 은행나무길 아래를 거닐고 있다. ⓒ News1 권혜민 기자

hanant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