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은 사내 메일·메신저 검열중"…도넘은 '노동감시'

"직장인 30% 경험 있다"…사생활까지 파고들어
관련법 없어 처벌 쉽지 않아…강력 규제법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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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현우씨 퇴사하기 전에 그 자료는 왜 다른 곳으로 보낸 거야?"

직장인 강현우씨(32·가명)는 몇달 전 그만둔 전 직장에서 온 연락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 직장의 상사는 강씨가 개인적으로 사내 이메일로 보낸 자료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있었다. '전산에 기록이 남아서' 물었다고는 했지만 불쾌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회사가 너무도 쉽게 직원들의 업무 내용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강씨는 이전에도 회사가 일상적으로 직원들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근 부서의 한 과장이 부하 직원들이 사내 메신저를 통해 자신을 욕한 것을 알아냈고 보복조치까지 했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개인들이 보낸 메시지를 지웠지만 그 내용이 회사 서버에는 남아 있었고 과장이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담당자의 컴퓨터를 켜고 이를 확인한 것이었다.

해당 과장은 징계를 받기는 했지만 승진까지 하고 여전히 회사를 잘 다니고 있지만 사생활을 침해 당한 직원들의 피해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회사로부터 감시받는다고 느끼는 직장인은 강씨뿐이 아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3년 실시한 '정보통신기기에 의한 노동인권 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30%가 회사로부터 감시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전자감시와 관련해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과 민원 수도 2011년 33건에서 2015년 101건으로 4년새 3배 이상 급증했다. 이런 이유로 인권위는 지난달 고용노동부와 행정자치부가 2012년 제정한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인사·노무 편)'에 사업장 전자감시의 주요 유형별 개인정보 처리요건과 절차, 근로자 권리 보호 등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이같은 제도적 강제에도 회사의 직원 감시는 업무영역뿐만 아니라 이제 사생활까지 파고들 정도로 그 정도가 되레 심해지고 있다.

박민우씨(28·가명)가 다니는 경기도의 한 회사 직원들은 '몰래' 담배를 피우는 일이 습관화 됐다. 회사 경영진들이 건물 외벽에 있는 폐쇄회로(CC)TV로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을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한 이유는 단지 '사장이 담배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박씨 회사의 경영진 중 한사람은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는지를 수시로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CCTV와 연결된 애플리케이션까지 설치했다.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또 다른 직장인 이영훈씨(29·가명)도 '회사가 지켜보고 있다'는 걱정에 회사에서 제공한 핸드폰 사용을 꺼리고 있다. 휴대폰에는 회사에서 설치한 '보안앱'이 설치돼있는데 정확히 어떤 '보안' 역할을 하는지 알 수도 없다. 이씨는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전화나 문자 내용도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회사 핸드폰 사용이 점차 두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사실 직원들에 대한 기업들의 감시는 오래된 인권침해다. 애초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 감시를 시작했다. 과거 공장에서 작업반장이 생산라인을 돌며 목청 높여 직원들을 닦달했던 것을 이제는 CCTV와 전산화된 업무처리 시스템이 대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감시활동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을 뿐더러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트린다고 경고한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타율 감시 통제를 통해서는 (생산성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관리방식은 후진국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5년 한국비교노동법학회가 발간하는 '노동법논총' 제25호에 실린 '전자노동감시에 대한 현행법제의 해석과 한계'에 따르면 전자감시는 정보의 비대칭으로부터 나오는 좌절감, 정보들이 수집·가공되어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지지만 자신은 관여할 수 없다는 소외감 그리고 상호 경쟁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 등으로 근로자들을 자기검열과 자발적 복종의 상태로 이끄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감시에 근로자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서울행정법원은 CCTV 감시와 통제로 근로자에게 스트레스를 줘 만성 적응장애가 발생한 경우에 대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도 했다.

전자감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 연구위원은 "선진국처럼 개인의 자발성에 의존해서 기업 생산력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로자 스스로 생산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동기부여에 대해 기업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과 함께 법 개정을 통한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인정보보호법 말고는 관련법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기업이 시설물관리·사고예방 등을 이유로 CCTV 등을 설치한다면 노동감시가 이뤄져도 제한할 수 없으므로 이를 강하게 규제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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