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고시의 비애③]고시 폐지하면 비고시와 차별 해소될까? <끝>

민주, 행시폐지 등 인사제도 개편안 내놔
삼성 인사전문가 이근면 前 인사처장도 결국 실패

1955년 서울대에서 실시된 고등고시 시험장 현장 ⓒ News1

(서울=뉴스1) 박정양 기자 = 고위 공무원으로 가는 지름길인 '고시'를 폐지하면 고시와 비고시 간 차별의 벽은 허물어질까.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비고시 출신들을 찾아보기 힘든 고시 독점 구조가 수년간 고착된 가운데 차기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행시폐지를 골자로 한 공무원 인사제도 개편안을 내놓아 주목된다.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 모임인 더좋은미래와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는 5급 공개채용 시험인 행정고시를 없애고 7급 공채시험과 합치는 내용을 담은 '공무원 인사제도 개편안'을 지난 19일 발표했다.

개편안은 5급 공채 출신들에게 지나치게 혜택이 집중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과거 개발시대에는 고시로 통칭되던 5급 관료의 임용방식이 엘리트 영입에 효과적일 수 있었지만 지난 20년간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높아졌고 행시 뿐만 아니라 7,9급 공무원 합격자 다수가 대학 졸업자라는 게 고시폐지의 논리다.

이들은 "그럼에도 5급 이상의 관료는 정부정책 결정과 감독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반면 6급 이하는 행정집행과 민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특히 7급은 역량을 발휘하기 보다는 행시를 병행하거나 퇴직 후 행시를 응시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는 직급 간 차이가 이들의 근로사기를 저하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고시 출신 독점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민간 경력 채용 제도 역시 고시 출신들 때문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민간 경력 채용자들은 실제로 고시출신 5급 공채에 비해 승진과 좋은 보직으로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다"며 "특히 개방형 임용제의 경우 계약기간 이후 공직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도한 계급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5급 채용제도를 전면적으로 폐지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며 "5급 공채기수의 동질성, 5급 입직자를 선호하는 조직문화로 인해 계급제의 부작용을 극복하려는 다수의 개혁시도가 의도하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부세종청사 창문 뒤로 태양이 저물어가고 있다. (자료사진) /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더미래연구소는 5급 공채를 폐지하고 일괄 7급으로 선발하게 되면 종전 300명에게만 실질적으로 부여되던 고위직 진입통로가 7급 인원 전체에게 개방되고 소수에게 권한이 보장되었던 기존의 폐쇄적 카르텔이 가져온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민주당안을 둘러싸고 공직 사회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렸다. 인사혁신처 고위 관계자는 "고시 출신 국·과장들이 자신들의 실적을 내기 위해 나이많은 비고시 출신들보다 젊고 행동이 빠른 고시 출신들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비고시 출신들이 사무관을 다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게 문제다. 사무관을 단 이후에는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간 인사차별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시출신들은 상대적으로 회전이 빠르다. 경쟁력을 갖춘 고시출신들은 과장이 되면 청와대 등 외부기관에서 데려가려는 경향이 많다"며 "똑같은 과장이라도 고시 출신들은 한 자리에 1년 정도 있으면 바뀌는 반면 비고시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체류기간이 길다. 누적된 가중치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비고시 출신들의 인사적체가 심하다"고 말했다.

고시 출신 한 국장은 "공직에 들어오는 자질 면에서 비교해보면 고시 출신들과 비고시 출신들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고시폐지를 반대하며 "다만 고시 출신들간 지나친 응집력을 해소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고시 출신들의 생각은 달랐다. 비고시 출신 중앙부처 관계자는 "우리나라처럼 평등을 강조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가 고시 출신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의외로 강하다"며 "이 문제는 언제가는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비고시 관계자는 "고시폐지가 답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어쩌면 우리는 여름인데 겨울옷을 입고 있는건 아닌지 모른다. 이렇게 차별할거면 전부 5급을 뽑으면 될 일"이라며 고시 폐지는 아니지만 현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고시 출신들도 비고시 출신들도 모두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인사 전문가였던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도 이 문제를 건드리려다 실패했다. 현 제도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고시제도 폐지가 답은 아닌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pjy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