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 바뀌었다고 역사적 공간·장인정신이 사라져선 안되잖아요"
퇴거 위기 '공씨책방' 살리기에 모인 시민들
소설 연재·영화 제작…시민연대활동 계획도
- 장우성 기자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사진 앵글도 잡기 힘든 열평 남짓 좁은 헌책방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부터 중년의 지역주민, 소설가, 문화기획자 등 직업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폭넓다. 십년지기들처럼 화기애애하지만 오가는 이야기들은 사뭇 진지하다.
45년 역사의 제1세대 헌책방이자 서울시가 지정한 '서울미래유산'인 신촌 '공씨책방'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이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오후 4시면 '반상회'라는 이름으로 어김없이 만난다. 공씨책방이 건물주가 바뀐 뒤 폭등한 임대료를 못 이겨 오랜 터전인 신촌을 떠나야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10월말부터 거의 빼먹은 적이 없다.
"헌책방을 소재로 한 단편영화 '비선형'(가제)을 찍고 있어요. 1980년대 대학가와 2017년 현재 대학가를 교차하는 이야기인데 다음주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18세 영화감독인 임진환 감독이 크랭크인 계획을 밝히자 사람들이 신바람이 나서 각자 아이디어를 풀어놓았다.
공씨책방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신촌 인근 헌책방들과 함께 추진할 연대활동도 주제로 올랐다. 책방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기 위해 작은 기념품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 교보문고 합정동 대형매장의 4월 오픈 이후 영향을 놓고도 열띤 이야기들이 오갔다. 위기의 출판산업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도 이어졌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공간인 반상회는 흔히들 말하는 '브레인스토밍'이자 집단지성의 현장이다.
정현석 소설가는 이 모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공씨책방 창업주인 고 공진석씨를 모티브로 한 소설 '안쿠'를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공통분모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씨책방이라는 역사적 공간과 장인정신이 주는 감동, 경외감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에요. 법을 떠나 상식, 도덕적 가치가 무시되는 현실에 '이건 아니다'라고 느낀 시민들이기도 하죠. 도시문제에 대한 관심도 공통점이고요.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의 운명조차도 건물주가 바뀌는 단순한 행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게 함께 느낀 충격입니다."
이제 반상회 모임을 재정비해 조합을 만들 계획도 세우고있다. 단순한 돕기에서 헌책방을 살리는 시민연대활동으로 한단계 발전시키자는 구상이다. 예술가들을 초청한 행사 개최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 다른 시민단체와 '헌책방투어'도 추진하고 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이 공간을 지키려는 노력이 "광장의 촛불과 다르지 않다"는 이들의 꿈은 공씨책방의 지난 45년을 넘어 미래의 45년을 향하고 있다.
공씨책방은 1972년 경희대 앞 '대학서점'으로 시작했다. 청계천 시절을 거쳐 1980년대 광화문에서 국내 최고 고서매장을 마련해 '헌 교보문고'라고 불리기도 했다. 광화문 재개발과 창업주 공진석씨의 갑작스런 별세 이후 신촌으로 옮겼으나 지난해말 입주한 건물의 주인이 바뀐 뒤 보증금과 월세를 3배가량 더 내지 않으면 퇴거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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