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연소 CPA "노력하면 된다는 거 보여줄 수 있어 기뻐"
10개월만에 회계사 시험 합격…성균관대 휴학·만 20세 박종홍씨
엄지손가락·엄지발가락 마디 없는 지체장애 극복…회계법인 입사 예정
- 박현우 기자
(서울=뉴스1) 박현우 기자 = 자주 넘어지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엄지발가락에 마디가 없는 장애를 갖고 있었다.
자주 넘어지는만큼 자주 일어섰다. 넘어지고 일어서며 넘어지지 않고 걷는법을 익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넘어지는 일이 줄었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40등까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고 싶지 않았다.
엄지발가락은 물론 엄지손가락 마디도 없어 펜을 쥐기가 힘들었지만 오기로 버텼다. 400명 중 60등이었던 성적은 3학년 수능을 열흘 앞두고 1등까지 올랐다.
대학교 입학 뒤에는 공인회계사시험(CPA)에 도전했다. 펜 쥐는 방법이 남들과 달라 필기하고 나면 어깨 통증이 심했다. 2차 시험을 앞두고 지난 5~6월 두 달 동안만 30번 넘게 한의원에 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공부했다.
아픈 몸과 외로움이 힘들게 했지만 또 다시 오기로 버텼다. 그리고 해냈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2014년도 제49회 공인회계사 제2차시험 합격자 명단에 '박종홍' 이름 석자를 올렸다.
평균 2년10개월 정도 공부를 해야 합격한다는 CPA를 박종홍(20·경영학과 3년 휴학)씨는 시험준비 10개월만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1일 오후 박씨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보통 CPA를 '공부양이 많아서 그렇지 계속하면 붙는 시험'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10개월만에 합격했다.
"오기가 컸다. 첫 두 달은 도서관 나가서 낮잠 자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했는데 두 달 정도 꾹 참고 하니까 관성이 붙었다. 공부를 조금씩 해 갈수록 경제지를 보면 아는 내용이 눈에 들어오고, 세상을 이해해 나가는 것 같아서 재밌더라. 고시긴 하지만 '떨어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시험이 아니고 세상에 나갈 수 있는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했다"
-왜 CPA가 되고 싶었나.
"최종적으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되고 싶다. 회계사는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두 언어 중 하나인 '시장의 언어'를 가장 잘 다루는 직업이다. 크게 회계와 금융, 심리로 나뉘는 시장의 언어 중 심리가 재무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회계와 금융을 가장 잘 다루는 회계사가 시장에서 가장 범용적인 직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씨는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의 마디가 없는 5급 '상·하지 지체장애'를 갖고 있다. 그래서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남들처럼 구부러지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신체적 한계도 이겨내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건 '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긍정적 성격도 한 몫 했다.
어렸을 때 장애 때문에 자주 넘어졌다는 종홍씨는 이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단지 (남들보다)덜 넘어지는 기간이 늦게 온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중학교 2학년 때 매끼니를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우다 보니 몸이 허약해져 매일 코피가 났을 때도 스스로 체력을 기르면 자연스럽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시작한 박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몸짱'이 됐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는 엄지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아 오래 필기하면 손이 아팠기 때문에 지지대를 스스로 만들어서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올라 가장 기뻤던 이유도 "노력으로 성적이 오르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라고 했다. 그는 "천재가 아니고 하면 된다는 걸 보여줘 친구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되길 바랐다"고 웃었다.
그런 박씨도 "가난은 힘들었다"고 말했다. 위로 나이터울이 많이 나는 형(34)이 있는 늦둥이다. 아버지(62)는 한국은행 산하기관에서 일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했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57)가 부동산중개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갔다.
-부모님이 공부 시작한다고 할 때 뭐라고 하던가.
"공부로 뭔가 도전한다고 하면 어머님이 절대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고등학교 때 나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그 부분은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기왕 할거면 행시를 준비하라는 말씀까지 하시더라(웃음)"
-공부할 때도 부모님이 큰 힘이 돼 주셨을 것 같다.
"공부를 하다 한참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어머니랑 통화하는 15분 정도가 하루 중 유일하게 말하는 시간이었다. 많이 외로웠다. 부모님 생각하면서 버텼다. 시험에 꼭 합격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빨리 취직을 해서 부모님 부담을 덜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이제 곧 일하며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 부모님께 용돈 안받아도 되는 게 가장 좋다"
-향후 계획은?
"회계법인에서 만 2년 정도 일하고 복학할 생각이다. 그 때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할 상황이면 인터넷 강의로라도 수업을 마쳐서 졸업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복학하면 시스템경영공학을 복수전공하거나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방안을 생각 중이다. 졸업하고 나면 회계법인에 남을 건지, 경영전문대학원에 갈건지, 금융공기업에 갈지 최종적으로 결정할 생각이다"
CPA 공부를 하며 매일 낮잠, '빈둥 대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박씨는 하루에 7시간씩 꼬박꼬박 잤다고 했다. '스터디'하는 것보다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남들 다하는 스터디도 한 번 안했단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선택하는 대신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스터디를 하지 않다보니 함께 밥 먹고 얘기를 나눌 친구들이 없어 일주일 21끼 중 15끼 이상을 학교 식당에서 혼자서 먹은 적도 있다고 했다.
특히 "4월에는 너무 외로워서 공부가 잘 안됐다"며 "지금까지 잘해온 건 보이지 않고 힘든 것만 보이더라"고 회상했다. 5~6월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필기법으로 인해 어깨 통증이 너무 심해 30번 넘게 한의원을 찾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느냐고 묻자 나이에 비해 훨씬 어른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공부하다 힘들면 성격이 모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나 혼자 빨리 공부해서 잘돼야지' 이런 식으로. 힘들 땐 학교 법학관 옥상에 올라가 넓은 세상을 보면서 꼭 다같이 잘 될 수 있는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어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건 '머릿속'에 세상을 담는 거고 옥상에 와서 휴식하고 명상하는 건 '마음'에 세상을 담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옥상에선 광화문도 보이고 63빌딩도 보이는데 시험 잘 보고 끝난 다음에 놀러도 가고 합격해서 멋지게 넥타이 메고 출근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현실이 됐네요"
삼정회계법인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로 한 박씨는 오는 22일 회계사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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