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놀이터를 삼킬 때…폐타이어로 '기후 놀이터' 만든 17세 [황덕현의 기후 한 편]
홍수 이재민 나이지리아 소녀, 기후재생 사업으로 '어스償'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세종=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올해 유달리 늦게 온 장마철은 이따금 모든 것을 떠내려가게 한다.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하천은 둔치를 삼키고 산책로와 체육시설을 물길로 되돌린다. 하천의 최대 유량을 최소 유량으로 나눈 '하상계수'가 클수록 이런 변화가 거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제시한 한국 강의 하상계수는 한강 90, 낙동강 260, 금강 190, 섬진강 270이다. 영국 템스강 8, 독일 라인강 14, 이집트 나일강 30보다 훨씬 크다.
강가에 만든 파크골프장도 예외가 아니다. 장마가 길어지면 문을 닫고, 물이 빠진 뒤에는 떠내려온 토사와 쓰레기를 걷어낸다. 잔디와 경계시설을 다시 깔기도 한다. 둔치는 본래 큰비가 올 때 물이 머물러야 할 공간이다. 평소에는 공원이지만 홍수 때는 다시 하천이 된다. 기후변화로 짧고 강한 비가 잦아질수록 '복구하면 다시 쓸 수 있다'는 전제도 흔들린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활동한 아마라 은우넬리(Amara Nwuneli)는 당시 17세의 나이에 이런 순환을 다른 방식으로 끊으려 했다. 2020년 집이 홍수에 잠기면서 가족과 함께 대피해야 했다. 부모가 운영하던 향신료 사업도 비에 농작물이 유실되면서 피해를 봤다. 그는 홍수 피해를 영상으로 알리고 200만 나이라(약 600만원)를 모았다. 모금액은 지역 학교 2곳을 복구하는 데 썼다. 이후 청소년 환경단체 '프리저브 아워 루츠'(Preserve Our Roots)를 꾸리고 2023년 아프리카 기후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아마라는 2024년 11월 라고스 이코타(Lagos Ikota)의 쓰레기장에서 모은 폐자원으로 놀이터를 만들었다. 지역 예술가·기술자와 함께 버려진 타이어, 폐목재, 금속을 모아 그네와 미끄럼틀, 암벽 구조물을 만들었다. 주변 지역에는 홍수에 강한 수종을 포함해 약 3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놀이터는 2025년 3월 개장해 지역 어린이들의 무대가 됐다. 인구 약 1700만명이 사는 라고스는 녹지가 전체 면적의 3%에도 못 미쳤다. 그래서 아마라가 첫발을 뗀 지역주도 기후 재생 사업은 의미가 깊다.
이 사업은 2025년 청소년 환경경진대회 '어스 상(償)'(Earth Prize)에서 아프리카 지역상을 받았다. 아마라는 라고스와 인접한 오군 주(州), 오요 주 등에 공원 3곳을 더 만들고 공동체 정원과 온실, 폐기물 수거 거점을 함께 넣겠다고 밝혔다. 놀이터를 쓰레기 처리와 녹지, 놀이권을 함께 묶은 지역 기후 적응 시설로 넓히려는 구상이다.
놀이터 하나가 홍수를 막을 수는 없다. 폐타이어의 안전성과 시설 유지관리도 계속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작은 공간을 단순한 놀이터로만 보기는 어렵다. 나무는 그늘과 증산작용으로 주변 온도를 낮추고, 흙은 빗물을 머금어 지표를 따라 한꺼번에 흘러가는 물의 속도를 늦춘다. 쓰레기장을 걷어내고 녹지를 들이면 폐기물이 배수로를 막거나 아이들이 오염된 물과 폐기물에 노출될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놀이터가 놀이권과 폭염·침수 대응을 함께 품은 생활권 기후 적응 시설이 되는 셈이다.
202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세계 주요 도시 약 500곳을 분석한 결과, 도시 녹지는 더운 계절 낮 동안 지표면 온도를 평균 2.9도 낮췄다.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에 많은 도시의 녹지 냉각 효과는 평균 2.5도로, 북미·유럽 등 고소득 국가에 많은 도시의 3.6도보다 작았다. 주민이 사는 위치와 인구 분포까지 반영한 냉각 효과도 각각 2.2도와 3.4도로 차이가 났다. 더 덥고 기반 시설이 부족한 도시일수록 정작 나무와 공원이 주는 보호를 덜 받는 셈이다.
기후재난은 아이들의 공간부터 지운다. 유니세프는 2024년 폭염과 홍수, 사이클론 등으로 85개국 학생 최소 2억4200만명의 수업이 중단됐다고 집계했다. 학교가 멈춘 재난 상황에서는 놀이터와 익숙한 일상도 온전하기 어렵다. 재난은 아이들에게 교육과 놀이, 익숙했던 일상을 함께 빼앗는다.
기후위기는 거대한 담론이지만 적응은 아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시작된다. 다음 세대에 남겨야 할 것은 거대한 감축 목표만이 아나다. 비를 견디는 흙 한 평과 더위를 피할 나무 한 그루,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기후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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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