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유치전 뛰어든 서남권…'숲이 증언한다'가 남긴 질문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지방소멸·청년 유출 막을 지역 생존 전략
입지·전력망·주민수용성 갖춰야 '지속가능'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10분짜리 스페인 단편영화 '숲이 증언한다'(Where Trees Weep)는 짧지만 긴장감이 팽팽하다. 숲 한가운데 벌어진 사건은 주인공인 노인이 자신의 땅을 도시화 사업에 팔지 않으려 했다는 사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과 경찰, 가족까지 개발을 설득하는 쪽에 선다. 그야말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것은 한국의 지역 개발 사업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그간 지방은 소멸을 걱정했고, 수도권은 계속 확대·강화됐다. 여러 지역은 국가산업단지를 따내고, 기업을 들이기 위해 경쟁해 왔다.
최근 전라권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 공장 건설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좋은 일자리와 청년 정착, 지역 세수 확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광주와 전남 장성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경북 구미도 뒤늦게 발 벗고 나섰다.
문제는 어떤 산업을 어떤 방식으로 유치하느냐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는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산업이다. 공장이 들어온다는 말은 일자리만 들어온다는 뜻이 아니다. 전력망과 용수(물), 폐수, 폐열, 송전선, 산단 부지, 주민 수용성까지 함께 들어온다는 뜻이다. 지방소멸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숲과 농지, 갯벌을 쉽게 밀어내면 지역 발전은 곧 난개발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래도 전라권은 다른 조건을 갖고 있다. 전남은 해상풍력과 태양광 잠재량이 크고, 새만금도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산단을 앞세워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 유치를 말하고 있다. 이는 수도권이 갖기 어려운 경쟁력이다. 반도체와 첨단산업을 유치하려면 이제 값싼 땅보다 깨끗한 전기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탄소국경조정과 RE100 압력이 커질수록 재생에너지로 만든 제품이 산업 경쟁력이 된다.
따라서 지역이 가져야 할 태도는 단순한 '유치전'에 머물러선 안 된다. 먼저 입지를 잘 가려야 할 것이다. 이미 훼손된 산업 용지와 유휴부지를 우선 활용하고, 생태 축과 산림, 습지, 농업 기반은 쉽게 내주지 않아야 한다. 다음은 전력 조건이다.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 직접전력구매계약(PPA), 지역 전력망 보강 계획이 없는 공장 유치는 미래 부담을 앞당길 뿐이다. 마지막은 이익 배분이다. 주민에게 전기요금, 수익 공유, 일자리, 교육·주거 인프라가 돌아가지 않으면 지역 발전이라는 말은 기업 유치 홍보로 끝난다.
'숲이 증언한다'의 노인은 개발을 무조건 거부하는 사람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는 모두가 땅을 돈으로 번역할 때, 숲을 숲으로 남겨두려는 사람이다. 한국의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방소멸에 대응하려면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개발이 발전은 아니다. 발전은 지역을 오래 살게 하는 것이고, 난개발은 지역이 가진 마지막 자산을 팔아 시간을 조금 버는 일이다.
반도체 공장 유치는 지역의 사활이 걸린 문제일 수 있다. 다만 지역 발전의 기준은 유치한 공장 수만이 아니다. 10년 뒤에도 사람이 살고, 자연이 버티며, 산업이 지속될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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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