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콩고에서 북극까지 갔다…처절하고 아름다운 '무리'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종이·나무 활용해 실물크기 꼭두각시로 행진…지구 반바퀴 돌아
이동·제작시 탄소배출도 고려…공연하는 도시서 청소년 교육도

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무리'(THE HERDS) 팀의 극지방 도착 모습 ⓒ 뉴스1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하얀 빙하 위를 거대한 동물들이 천천히 걸어간다. 얼룩무늬 사슴, 목을 길게 뻗은 기린, 뿔이 길게 솟은 영양까지. 평소 살던 지역을 벗어나 극지방을 향하는 모습은 마치 추위와 굶주림을 피해 달아나는 피난 행렬 같다. 머지않아 닥칠 기후붕괴에 따른 대탈출을 예견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 탈출은 기후위기의 미래를 가정한 '연극'이다. 종이와 나뭇조각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동물 꼭두각시는 기후위기와 멸종위기를 상징한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꼭두각시의 다리와 몸을 붙잡고 함께 움직이며,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보이도록 세심히 연기했다.

이 퍼포먼스의 이름은 '무리'(THE HERDS)이다. '무리'는 지난 4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에서 출발해 나이지리아와 세네갈, 모로코를 거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다.

대서양 건너편 유럽에서는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을 지나치며 기후위기로 인한 생물 멸종에 대한 우려를 동물극으로 표현했다. 7월 영국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 개막 공연인 '맨체스터 카메라타 오케스트라'의 연주 도중에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무리는 결국 지난달, 북극권인 노르웨이 노르드캅에 도착해서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총이동 거리는 지구 반 바퀴가량인 2만㎞에 달한다.

행렬의 시작은 코끼리, 기린, 사슴, 사자 등으로 단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종류와 수가 늘어났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녹색 원숭이가, 유럽에서는 늑대와 붉은사슴이, 노르웨이에서는 순록이 새롭게 합류했다. 이는 기후재난으로 서식지를 잃고 끝없는 이주를 반복하는 동물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무리' 더 허즈(THE HERDS) 팀 ⓒ 뉴스1

예술감독 아미르 니자르 주아비는 "무리는 살아 숨 쉬는 행동 촉구이며, 기후위기에 대한 긴급한 예술적 응답"이라고 설명했다. 주아비 감독은 2021년 난민 소녀 꼭두각시 '작은 아말'(The Walk) 프로젝트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바 있다. 당시 작은 아말은 유럽 18개국을 걸으며 난민 문제를 알렸지만, 이번에는 동물들이 주인공이 되어 인간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무리 퍼포먼스에는 런던 영 빅 극장 예술감독 출신의 데이비드 랜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꼭두각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우콴다 인형·디자인아트 컬렉티브가 제작했다. 재활용 종이와 목재 등을 새활용(업사이클링)했다. 이 단체는 지난해 남아공 플뢰르 뒤 캅 시상식에서 꼭두각시 디자인 부문 최고상을 수상한 바 있다.

'무리' 공연은 전 과정을 '탄소중립 대응 극(劇) 기준'(Theatre Green Book)에 맞춰 설계했다. 이동과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했다. 공연이 열린 도시마다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학생들이 사막여우와 바다거북, 퍼핀 같은 작은 꼭두각시를 직접 만들어 보며 기후변화와 자연의 관계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전 세계적 공연이 된 이 극은 세계자연기금(WWF)과 TED 등 국제 기후·환경단체 등의 관심 속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꼭두각시들은 도시의 광장, 항구, 그리고 북극의 빙하까지 이어가는 동안 인간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멸종위기 동물들이 도망치는 모습은 결국 인간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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