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칼럼] '질문하는 인간'의 '그랜드 퀘스트'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편집자주 ...서울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학신문 부주간, 교무부처장, 학생처장, 기초교육원장, 인문대학장, 한국연구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중등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국내 대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천재교육)의 대표저자이며 현재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호모 콰렌스'(Homo quaerens)라는 말이 주목받고 있다. '콰렌스'(quaerens)는 '찾다' 또는 '탐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쿠아이레레'(quaerere)에서 유래한 말로, '호모 콰렌스'란 '질문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공지능(AI)이 보편화하면서 인간의 자리가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에 인간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로 남을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재구성할 통찰력 있는 질문을 제기하는 역할은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으리라는 점에서, '호모 콰렌스'로서 인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질문은 인간 문명 탄생의 출발점

질문은 인간이 여타 동물과 달리 세상을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존재가 되게 만든 원동력이다. 직립 보행이나 도구의 사용 등 인류가 문명을 만드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중요한 계기들이 있지만, 거대한 자연의 변화 앞에서 그저 두려워하며 숨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던진 것은 위대한 문명을 탄생시킨 출발점이었다. 인간은 질문을 통해 세상을 두려움이 아닌 탐구의 대상으로 바꿨고, 스스로 그런 능동적 탐구의 주인공으로 성장했다. 그런 점에서 질문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은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아인슈타인은 어려서부터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서 빛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질문을 화두처럼 갖고 있었다. 일견 엉뚱해 보이는 그 질문이 나중에 특수상대성이론이라는 물리학의 위대한 업적을 낳았다. 파스퇴르는 "생명체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질문에 집착했다. 위대한 학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순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그 질문이 없었다면 인류는 발효의 통제나 백신을 통한 면역 같은 귀중한 과학적 성과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가 이루어온 빛나는 진보를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자양분은 질문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출처: AP통신, 1931년,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AI 시대에 창의적 질문 유도하는 대학 교육 필요

근래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교육 현장의 걱정이 많아졌다. 교수자는 AI의 어지러운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 쉽지 않은데 학생들은 이미 AI 사용에 빠르게 적응해, 변화를 반영하도록 교육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당위론과 그러지 못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식 생산 구조는 오랫동안 외국의 이론을 충실히 학습하고 정교하게 재현하는 데 치중했으니, AI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지식 생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AI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부각하는 게 질문하는 능력인데, 우리 교육 시스템은 창의적 질문을 제기하기보다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찾는 데 치중해 왔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답을 잘 가르쳐주는 선생이 아니라 질문을 잘 던지는 선생이 필요하고,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기보다 학생 스스로 질문을 찾도록 이끌어주는 선생이 더욱 필요하다.

올해로 개교 80주년을 맞이하는 서울대가 주어진 문제의 정답 찾기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그랜드 퀘스트'(Grand Quest)라는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건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과 학술 영역의 가장 큰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가 안락한 틀을 스스로 깨고 낯선 길로 과감하게 나서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랜드 퀘스트'는 반도체나 AI 같은 첨단 과학기술 분야는 물론이고 AI 시대에 요구되는 인문학적 가치와 윤리에 이르기까지, 특정 분야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갈 통찰력 있는 질문을 융합적으로 제기해 보자는 시도다. 교직원과 학생을 포함한 서울대 전체 구성원이 전공은 물론 일상에서도 기존 통념을 깨는 질문을 제시하는 데 지혜를 모아보자는 캠페인이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가 열린 지난해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베네시안 엑스포에 마련된 웨이즈 전시관에서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로봇 아미카가 관람객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신웅수 기자
세상에 없는 길을 찾는 서울대의 '그랜드 퀘스트'

물론 이런 시도가 단기간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문제는 당장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수 있고, 어쩌면 끝내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도 자체가 타성에 젖은 우리 사회에 큰 자극제가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프로젝트가 설령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과 바뀌는 문화는 또 다른 도전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그동안 보장된 성공의 길을 벗어나지 않는 집단처럼 인식된 서울대가 거듭되는 실패를 감수하면서 도전하는 건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문화적 전환을 촉발하는 상징적 운동이 될 수 있고, 오랜 세월 국가 차원의 막대한 지원과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아온 서울대가 스스로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상아탑 넘어 대한민국의 그랜드 퀘스트로 확장해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야당 대표이던 때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공론화하는 '모두의 질문 Q'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집단지성의 형태로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기 위한 질문을 제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일인데, 이번 서울대의 '그랜드 퀘스트'도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이는 보수나 진보 등 정치적 태도를 떠나서 글로벌 지정학 질서 재편과 AI 보편화로 인해 전대미문의 변화를 겪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시대적 책임에 해당하는 문제의식이다.

서울대의 이번 시도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교육과 연구 현장을 일신하고 국가의 지식 생태계를 획기적으로 재구성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공동체가 되려면 익숙함을 깨뜨리는 '왜'라는 과감한 질문을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하고, '그랜드 퀘스트'는 그런 변화를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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