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료는 회복됐지만 인력은 아니다"…추계위가 본 의정사태 이후
전공의 공백 속에서도 진료량 유지…PA·보조인력 등 영향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의정사태 이후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량은 빠르게 회복됐지만, 이를 곧바로 의사 인력의 복귀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는 전공의 공백 속에서도 진료가 유지된 구조 자체가 이전과 달라진 점을 두고,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는 의사를 임상 현장에 붙잡아둘 수 없다는 점을 수급 추계의 핵심 변수로 재검토하고 있다.
22일 의료계와 복수의 회의 관계자 설명을 종합하면 추계위는 최근 열린 제11차 회의에서 의정사태 이후 의료현장의 변화가 의사 수요·공급 추계에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요 쟁점으로 다뤘다.
의정 갈등 이후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량 회복과 관련해 다수의 위원은 "전공의 공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외래와 입원 진료가 상당 수준 유지됐다"며 "이를 곧바로 진료 정상화나 의사 인력의 원상 복귀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진료량 회복의 이면에 어떤 인력·운영 구조 변화가 있었는지를 분리해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진료 회복 양상의 배경으로 진료지원인력(PA) 투입 확대와 진료 분업 구조의 변화 가능성을 함께 검토했다. 일부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전공의 인력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진료지원인력 활용과 진료 구조 조정을 통해 외래·입원 진료를 유지해 온 사례가 보고됐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인력 대체라기보다 병원 내 진료 운영 방식 자체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했다.
추계위 내부에서는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비상 대응'에 그칠지, 아니면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질지를 수급 추계에서 별도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병원들이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력 운영 방식을 조정하면서, 의사 1인이 담당하는 업무 범위와 진료 분담 구조가 이전과 달라졌고, 이 변화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의정사태가 의사 공급의 지속성에 미친 영향 역시 주요 논의 대상이었다. 회의에서는 국립대병원과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누적돼 온 결원 문제가 현재 수급 추계의 전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병원, 국립대병원 교수직, 보건지소·보건진료소 등에서 나타나는 인력 공백이 단순한 배치 문제를 넘어, 장기적인 임상 이탈을 촉발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위원들은 의정 갈등 이후 과중한 업무 부담과 불확실한 근무 환경이 조기 임상 이탈을 가속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진료량이 유지되거나 회복될 경우, 남아 있는 의사들의 업무 강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이는 다시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구조적 이탈은 단기 통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중장기 공급 추계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민간 의료기관 비중이 약 90%에 달하는 국내 의료 구조 역시 논의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총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인력을 배분하려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렵고, 시장 기능에 따른 배분이 가능해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공급 여력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의정사태 이후 나타난 인력 이동과 진료 구조 변화는 이러한 한계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의대 정원 확대의 정책 효과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졌다. 위원들은 의대 정원 확대가 공급 확대의 한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근무 환경과 역할 구조가 함께 개선되지 않을 경우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추계위 관계자는 "의사 수급 추계는 더 이상 숫자를 맞추는 계산이 아니라, 의료체계 변화와 정책 충격을 어떻게 흡수할지를 보여주는 분석 도구로 전환되고 있다"며 "총량 확대만으로는 의사를 임상 현장에 묶어둘 수 없다는 점이 이번 논의를 통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앞선 9차 회의에서 한 추계위 위원은 인공지능(AI) 생산성을 의사 수급 추계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1차 회의에서 추계위는 이를 의대 정원의 핵심 변수로 채택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위원들은 AI가 아직 임상에서 의사를 대체할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고 봤다. 또 해당 위원이 데이터를 제출하지 않았으며, 실제 진료 유지에 미친 영향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수급 추계에 반영할 경우 오히려 가정을 왜곡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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