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청구한 '인지 부채'…AI 교육의 시작은 [기고]
최현종 한국교원대 컴퓨터교육과 교수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전은 인공지능(AI)이란 용어를 정보통신(IT) 분야의 전문 용어가 아닌 일상 용어로 바꾸게 한 이벤트가 됐다. 인간의 전유물이라 생각한 높은 수준의 창의적 전략을 인공지능이란 기계 시스템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이후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생활 주변에 급속도로 파고들었다. 작은 청소기부터 냉장고, 자동차 등의 각종 기기에 인공지능 기능이 탑재됐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정보화 사업으로 초·중등학교에 IT 인프라가 구축되고, 모든 교과 교육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에 인공지능 교육 패러다임이 교육계에 도래했다. 2019년에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AI 강국으로의 변화를 기점으로 이재명 정부는 인공지능 교육을 초·중등과 전문 교육에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이에 인공지능 관련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고려해 다음과 같은 논의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인공지능 교육을 위한 충분한 교육 여건을 확보하고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교육을 위해서는 교과 편제, 교사 수급, 교육 환경 등이 필요한데, 이 중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관련 교과의 편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관련 내용의 학습 시간을 살펴보면 초등학교는 34시간, 중학교는 68시간이 배정돼 있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필수 교과(과목)에 컴퓨터나 인공지능 관련 과목이 개설돼 있지 않고 다른 과목의 학습 내용에 일부 포함돼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관련 필수 과목의 선정과 충분한 학습 시간이 확보돼 않으면 허울뿐인 정책만 제시한 것과 다름이 없는 결과가 생길 것이다.
둘째, 인공지능 교육의 목표와 필요성에 관한 논의 체계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인공지능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기본 개념 몇 가지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교육이 초등학교에서 시작하는 보통 교육을 거쳐 대학이나 전문 교육까지 체계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교육의 개념적 정의를 확립하고 교과로서의 목표와 성격 설정이 선행돼야 한다.
인공지능 교육은 크게 인공지능 학문, 기술 자체를 내용으로 하는 인공지능 리터러시(소양) 교육과 교과(전문) 교육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을 다양한 문제나 교과에 활용하는 인공지능 활용 교육 혹은 융합 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는 인공지능 리터러시와 활용 혹은 융합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고, 고등학교부터는 다양한 전공 관련 교과 교육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
셋째, 인공지능과 사용자의 역할을 고려하는 인공지능 교육이 성립돼야 한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공지능을 문제 해결이나 교과에 활용하는 실험 연구 결과에서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는 개념이 대두됐다. 이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억력과 사고력과 같은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하고, 문제 해결력과 창의력이 향상될 수도 있다는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초·중학교 학생의 경우 특히 이에 관한 문제점이 표출되기 쉬운 연령대이기 때문에 인공지능 교육의 성격과 내용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넷째, 인공지능 교육을 논할 때 항상 윤리적 문제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는데, 이와 더불어 '건강한 사용' 또한 중요하다. 건강한 사용에는 신체적 건강을 위한 조건들도 있고, 더불어 사회 관계적 건강도 중요한 요소다. 디지털 기기와 매체이기에 과사용으로 신체 부위의 이상 현상들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관한 신체적 건강 교육이 중요하다. 또한 인공지능이 갖고 있는 데이터 편향성 등의 문제로 인해 개인의 정신적, 사회적 가치관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에 개인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적응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100대 브랜드에 오래전부터 IT 관련 회사가 다수 포함돼 있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 관련 회사들이 국가와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인공지능 정책을 국가의 국정 과제로 설정하고, 다양한 관련 의제를 설계하고 진행하고자 한다. 하지만 교육은 경제나 산업과는 다른 차원인 사회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계를 다루는 일반적인 업계에서는 입력된 값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출력되는 값이 명확하게 정의되거나 예측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교육은 결과로 산출되는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거나, 학습자마다 가진 특성으로 쉽게 예측하거나 단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육이 갖고 있는 다양한 변수인 교육과정이나 환경, 학습자, 교사 등을 함께 고려하면서 정책을 추진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교육을 위한 준비로 가장 먼저 해결해야 문제는 인공지능 교육의 필요성과 정체성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시간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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