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가 경쟁 더 부추겨…고작 17살인데 진로 선택 강제"

[고교학점제 반년]② 더 고달픈 학생·학부모
선택과목 신청 시기 엇박자…"위태로운 결정 반복"

지난 3월 27일 오전 고교학점제 수업을 시행 중인 서울 관악구 당곡고등학교에서 '스마트콘텐츠 실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 2025.3.3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김재현 기자 = 학생의 과목 선택권 강화 등을 위해 도입한 고교학점제가 시행된 지 반년. 힘든 건 교사뿐만 아니다. 학생·학부모도 고교학점제 때문에 고달프다.

교사의 대표적 고충은 늘어난 업무 부담이었다. 학생·학부모는 경쟁을 더 부추기고 진로 결정도 강제하는 구조라고 호소했다.

고1 김모 양은 1학기 때부터 공부와 관찰을 병행했다. 미리 과목별로 어떤 학생이 우수한지 파악하고 자신의 실력과 견줘본 뒤, 선택과목 신청 때 유불리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제도 변화로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나 더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오히려 고교학점제가 키운 역설적 경쟁도 있다. 학생들은 듣고 싶은 과목을 듣기 위해 이동수업을 하지만, 정작 같은 반 친구들이 아니어서 협업이나 프로젝트 등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이모 군은 "사실상 모르는 사람이니까 경쟁자라는 생각밖엔 안 든다"고 했다.

학부모 황모 씨는 "고등학교 땐 사회성을 더 키워야 할 중요한 시기인데 친분 없는 학생들을 한군데 모아두다 보니 다 경쟁 관계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했다.

학부모 박모 씨는 "학생 수업 선택권을 보장하고 과도한 입시 경쟁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고교학점제가 오히려 현장에서 경쟁을 더 과열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거 같다"고 지적했다.

진로 결정 강제…불안한 마음에 결국 사교육行

선택과목을 정하기도 어렵다. 자신의 진로를 깊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양은 "그동안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거나 탐색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는데도 당장 (2학기에) 과목을 선택해야 했다"며 "그 선택이 오히려 더 나를 방황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참고로 고교학점제에서는 1학년 때 공통과목을 듣고 2학년 때부터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 수강한다. 2학년 선택과목은 1학년 2학기 개학 직후 신청한다.

불안한 마음은 결국 이들을 사교육으로 이끈다. 고1 김모 군은 "1학기 때 강남에서 고교학점제 관련 컨설팅을 받았다는 학생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며 "1시간에 80만 원이나 했지만 다양한 학생들이 컨설팅받으며 누적된 정보가 있을 거라 판단해 선택과목 신청 전 엄마를 조르고 졸라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선택과목이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군은 "아무리 선택과목이라지만 사실상 '내 선택'과 '내 진로'는 없다"며 "상대평가이다 보니 학생 수가 적은 과목을 택하면 내신에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친구들이 몰리는 과목에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선택과목 신청 후에도 문제다. 학부모 김모 씨는 "선택과목을 신청해도 학교는 해당 과목에 몇 명이 신청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며 "신청 학생이 적으면 그만큼 내신 부담도 커지는 건데, 전혀 알 수 없어 걱정이다"고 했다.

고교 선택과목 신청-대학 입학전형 발표 '엇박자'

선택과목 신청 시기와 대학별 입학전형 발표 시기가 엇박자인 점도 불만이다.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학과의 내신 반영과목이 발표되기도 전에 선택과목을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일부 대학 중에서는 선택과목 신청이 끝났는데도 내신 반영과목을 공개하지 않는 곳도 있다.

학부모 황 씨는 "대학·학과가 내신 반영과목을 발표하기 전 아들이 물리학과와 천문학과를 희망해 관련 선택과목 2개를 일단 신청했는데, 그 이후 대학은 과학 선택과목 4개를 모두 허용했다"며 "대학이 내신 반영과목을 발표하기 전에 선택과목 신청을 강요하다 보니 불리한 상황이 돼버리는 것"이라고 허탈해했다.

그는 "대학이 학생들이 불안하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1학기 때 대입 반영과목을 공개하는 게 맞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위태로운 결정의 반복"

학부모 김 씨는 고교학점제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제도는 처음 시행하고 아무런 정보가 없어 더 경쟁적인 환경에서 유불리를 판단하기도 전에 진로를 강제로 결정해야 한다"며 "위태로운 결정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kjh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