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끝난 글로컬대학, 지금 바로잡아야 할 것 [변기용의 교육 포커스]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 올해 9월로 지난 3년에 걸친 '글로컬대학 30' 선정이 마무리됐다. 최종 라운드에서 7개 혁신모델(9개 대학)이 추가로 선정되면서 총 27개 모델, 39개 대학 체제가 완성됐다.
이번 발표에는 충남대–국립공주대 통합 모델과 조선대–조선간호대 통합 모델이 포함됐고, 전남대·제주대 등도 막차에 올랐다. 사업 구조는 변함없이 대학당 5년간 최대 1000억 원을 지원하고, 통합형의 경우 최대 1500억 원까지 열어두는 방식이다.
이로써 전남대·충남대·제주대가 추가되며 지역 거점 국립대 9곳이 모두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이 사실만 두고 보면 '지역 혁신의 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재정과 제도적 특례를 한데 모은 대형 프로젝트의 외형이 갖춰졌다. 그러나 외형이 목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당초 설정한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먼저, 이번 라운드의 선정에서 읽히는 세 가지 신호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통합'이 여전히 글로컬대학의 패스처럼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충남대–국립공주대, 조선대–조선간호대의 사례가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통합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과거 국립대 통합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핵심 교훈은 통합 자체가 아니라 통합 후 시너지를 어떻게 입증하느냐였다.
통합 뒤 상대적으로 열악한 분교·캠퍼스의 공동화, 즉 학생·교원이 빠져나가 불 꺼진 캠퍼스가 생기는 부작용은 이미 선행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이번에도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무엇이, 어떻게 좋아졌는가?'라는, 통합으로 창출된 시너지의 증거가 제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합은 '형식적 캠퍼스의 합체'로 끝난다.
둘째는 '거점 국립대니까 당연히 된다'는 인식의 위험이다. 실제로 9개 거점 국립대가 모두 선정됐지만, 이것이 모든 거점 국립대가 글로컬대학 사업 추진을 위한 역량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자동으로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6월 연차평가에서 경북대가 최하위 D등급을 받았다는 최근의 언론 보도는 상징적이다. 거점 국립대라 하더라도 실행력이 떨어지면 감액이나 사업 정지 같은 강력한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하며, '거점'이라는 지위가 면죄부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 원칙은 '역량 중심 선별 투자'여야 한다.
셋째는 정치적 개입의 유혹이다. 9월 26일 교육부 공식 발표 전, 특정 지역 정치인이 글로컬대학 최종 선정 결과를 SNS에 올렸다가 삭제해 구설에 올랐다. 평가·선정은 정치인이 자기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메시지의 소재가 아니라 공정성과 보안이 생명인 행정 절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과의 정당성과 수용성이 동시에 훼손될 수 있다.
이 세 가지 신호는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큰 틀에서 같은 개선의 방향을 가리킨다. 형식적 통합이 아니라 실질적 시너지 창출, '거점'이라는 간판이 아닌 성과를 통해 납세자들에게 설명하는 책임의 부과, 그리고 평가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을 차단하는 견고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달리 말해, 사업단 선정은 완료됐지만 이제라도 평가와 사후관리의 설계를 체계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글로컬대학 사업의 당초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2025년 전면 도입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통해 파편화된 정부 재정지원 사업을 묶는 부처·사업 간 연계·공유형 투자 플랫폼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이를 통해 투입되는 다양한 예산과 평가를 일관된 관점에서 함께 정렬해야 한다.
글로컬대학 사업단이 완성된 2025년 현재 각 지역에서는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연구 지원·인재 양성'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교육부의 두뇌한국(BK)21 4단계(2020~2027),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공지능(AI)대학원 지원 사업, 보건복지부의 바이오헬스 인재양성 패키지 사업, 17개 광역지자체의 RISE 재정지원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다 새 정부가 추진 중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까지 더해지면, 서로 다른 양식·주기·지표의 공모와 평가를 중복으로 수행하느라 대학 현장의 비효율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연계와 조정이다. 그래야 중복투자를 줄이고, 사업 간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또 하나 글로컬대학 30 사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개선 방향은 평가의 타당성(validity) 즉 '정말 중요한 것을 제대로 재고 있는가'라는, 평가에 충실한 평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평가에 대한 평가'(메타평가)를 제도화하는 일이다. 메타평가는 말 그대로 '평가에 대한 평가'로, 평가 지표와 시행 방식이 본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고 있는지를 독립적으로 점검하는 장치다. 특히 글로컬대학30 사업과 같이 예산 규모가 큰 사업의 경우에는 반드시 메타평가를 실시해 문제점을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글로컬대학 사업이 단순히 '보고서만의 개혁'이 아니라 '대학 현장과 지역을 바꾼 사업'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대학 간 통합은 간판만 합치는 일이 아니라 통합을 통해 무엇이 좋아졌는지를 실제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거점 국립대라는 이름표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좋은 결과를 낸 곳이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을 받는 원칙이 기본이 돼야 한다.
평가는 점수에 따라 단순히 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무엇을 고치고 어떻게 좋아졌는지 대학과 외부 전문가가 함께 점검해 대학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성찰과 학습의 과정이 돼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정치적 외압과 파편화된 사업 추진으로 인한 비효율을 극복할 수 있다. 글로컬 대학 선정이 완료된 바로 이 시점에 이런 기준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지가 향후 이 사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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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