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 만들려 시험지 훔친 엄마…딸 퇴학· 母실형 '엇나간 모정'

[사건의재구성] "시험지 가져다주면 사례" 과외교사와 거래…5학기 시험지 유출
퇴직 뒤엔 함께 학교 침입…범행 들통날까 행정실장까지 가담해 CCTV 삭제

(서울=뉴스1) 권준언 기자 = 경북 안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줄곧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전교 1등'으로 알려졌던 A 양. 하지만 그 성적은 온전히 실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A 양의 과외교사이자 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C 씨가 5개 학기에 걸쳐 시험지를 미리 빼돌려 건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처음에는 시험 관리 업무를 맡고 있던 C 씨가 시험지를 복사해 전달했다. C 씨가 학교를 떠난 뒤에는 어머니 B 씨와 함께 직접 학교에 침입해 시험지를 훔쳤고, 현직 교직원까지 가담하면서 범행은 점점 대담해졌다.

"시험지 가져다주면 사례"…과외교사와 시작된 거래

기간제 교사 C 씨가 A 양 가족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21년이었다. C 씨는 A 양이 다니던 학교의 기간제 교사이자 A 양의 개인 과외교사였다. 2021년부터 일주일에 두 차례씩 A 양에게 국어를 가르쳤고, 2023년에는 학교 연구부에서 시험원안지와 문항정보표를 취합하는 등 정기시험 관리 업무를 맡게 됐다.

그해 4월 A 양의 어머니 B 씨는 C 씨에게 "시험지를 가져다주면 사례를 하겠다"는 취지로 제안했다.

4월 17일 오후 7시 30분쯤 C 씨는 교무실 캐비닛의 문항정보표와 인쇄실에 보관된 시험원안지를 복사해 B 씨에게 건넸다. A 양은 이를 미리 풀어본 뒤 일주일 후 시작된 중간고사를 치렀다.

B 씨는 이날 C 씨에게 현금 200만 원을 건넸다. 법원은 C 씨가 이후 2025년 7월까지 시험지 유출 대가 등으로 16차례에 걸쳐 총 3150만 원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시험지 유출도 반복됐다. A 양은 5개 학기에 걸쳐 미리 확보한 시험지를 이용해 시험을 치렀고 최상위 성적을 얻었다.

퇴직 뒤엔 직접 학교 침입…행정실장도 가담

C 씨가 2024년 2월 학교를 떠나자 이전처럼 시험지를 복사해 빼내기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C 씨와 B 씨가 직접 학교에 들어가 시험지를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해 4월 20일 오후 4시 50분쯤 C 씨는 퇴직 전 등록한 지문으로 본관 출입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1층 인쇄실로 향했고, C 씨가 캐비닛에서 시험지를 꺼내 건네자 B 씨는 이를 에코백에 담았다.

두 사람은 2024년 4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1차례 학교에 침입했고, 7차례 시험지 등을 훔치거나 훔치려 했다.

범행에는 학교 행정실장 D 씨도 가담했다. D 씨는 범행 목적을 알면서도 초과근무 중인 교직원과 퇴근 시간을 알려주고, 행정실 문을 잠그지 않거나 출입 비밀번호와 열쇠를 제공했다. 법원은 D 씨의 도움으로 C 씨가 퇴직한 뒤에도 3개 학기 동안 범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봤다.

경비 시스템 울리자 도주…CCTV까지 삭제

2년 넘게 이어진 범행은 2025년 7월 꼬리를 잡혔다. C 씨와 B 씨는 7월 4일 새벽 다시 학교에서 시험지를 빼내려다 교내 경비 시스템이 작동하자 달아났다.

이틀 뒤 이들은 학교에 남은 흔적을 없애려 했다. C 씨는 D 씨에게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의 CCTV 영상을 삭제해달라는 취지로 부탁했고, 옆에 있던 B 씨도 "꼭 삭제가 되어야 된다"고 말했다.

D 씨는 같은 날 오전 2시 17분쯤 CCTV 장치의 저장기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영상을 삭제했다. B 씨도 자신과 딸의 휴대전화를 훼손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학교 출입 기록과 통화기록, 카카오톡 자료 등 관련 증거를 확보했다. D 씨도 경찰에 자진 출석해 범행을 자백하고 통화 녹음 내역 등을 제출하면서 시험지 유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5학기 '최상위 성적'…돌아온 건 '퇴학·형사처벌'

사건이 드러난 뒤 A 양의 학교 성적은 모두 무효 처리됐고 퇴학 처분도 내려졌다. 어머니 B 씨에게는 실형이 선고됐고, A 양 역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인 대구지법 안동지원은 지난 1월 특수절도와 업무방해,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기간제 교사 C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3150만 원을 추징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어머니 B 씨는 징역 4년 6개월, 범행을 도운 행정실장 D 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업무방해와 방실침입 혐의로 기소된 A 양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을 "교육의 본질과 공적 교육기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든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학교 학생들의 정당한 학습권과 공정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질타했다.

다만 A 양에 대해서는 "성적에 대한 중압감 속에서 어머니인 B 씨의 강한 요구에 따라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후 항소심에서는 B 씨와 C 씨의 형이 줄었다. 대구지법 형사4부는 지난 5월 B 씨의 형을 징역 4년 6개월에서 3년 4개월로, C 씨의 형을 징역 5년에서 4년 4개월로 각각 감형했다.

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