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이라 해도 명예훼손 아니다?…대법, 무죄지만 "부적절 표현"

여성단체 대표 지칭 '레즈비언' 글 게시…2심 "가치중립적 표현"
대법 "부정적 맥락이면 명예훼손 소지"…공익성 인정 무죄는 확정

대법원 전경 ⓒ 뉴스1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타인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표현을 부정적인 맥락에서 언급했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여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치중립적이더라도 이를 언급하며 타인을 비판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게시했다면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는 취지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 씨는 2021년 8월 네이버 블로그에 여성 인권 활동 단체 대표 B 씨가 남성 혐오를 하는 것은 B 씨가 레즈비언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글을 작성해 B 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B 씨는 공인으로서 이 글을 게시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했다. B 씨가 대표로 있는 단체가 성평등 추구 단체가 아닌 남성 혐오 단체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는 취지다.

그러나 1심은 "문제가 되는 명예훼손적 표현은 피해자가 레즈비언으로서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면 모두 혐오하고 남성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도 혐오한다는 내용"이라며 "이는 공인의 공적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으로 보기 어렵다"며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는 성정체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가치중립적 표현이므로, 그 자체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주목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 없겠으나 성정체성을 밝혔더라도 성평등 지향 단체 대표로서 활동하는 데 제약·장애가 발생한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 성별 갈등 조장 주체가 B 씨가 대표로 있는 단체라는 판단에 따라 게시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점 △ B 씨가 갖고 있는 성 관념은 B 씨 공적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B 씨 자신의 성 관념에 대한 검증이나 비평도 감수해야 하는 측면도 있는 점 등을 볼 때 A 씨의 블로그 글 작성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다소 달랐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행위라 위법성이 조각돼 무죄라는 결론은 2심과 같았지만, '레즈비언'이 가치중립적 표현이라는 2심 판단에 대해선 부적절하다며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비록 피해자가 이전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단체 내부에서 밝힌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신뢰하는 공간에서 이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타인에 의하여 일반 공중에 개인의 내밀한 성적 지향이 드러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그것이 부정적 인식과 편견에 기초하여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를 폄하하려는 부정적인 맥락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피해자가 이전에 이를 스스로 밝힌 적이 있는지에 관계없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심은 글을 읽는 불특정 내지 다수인들에게 초래할 B 씨에 대한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 저하의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단지 그 단어의 가치중립적인 측면만을 중시한 채 B 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단정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향후 우리 사회의 발전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동성애 성적 지향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도 변화해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완화되는 경우에는 그런 변화를 감안해 달리 판단할 여지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o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