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서면 제청' 탄핵 사유?…법조계 "헌법, 조건 없이 제청권만 규정"

"각자 헌법상 권한 행사하면 돼" "협의 안 한 책임은 있어"

조희대 대법원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2026.8.20 ⓒ 뉴스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새 대법관 후보자를 임명 제청하면서 관례에 따라 대면 제청이 아닌 서면 통보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 사퇴를 넘어서 탄핵까지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대법원장이 기존 관례로 해온 사전 합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탄핵 사유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으로 각각 손봉기·김성수 부장판사를 이 대통령에게 기존 관례인 대면이 아닌 서면 방식으로 임명 제청했다.

다만 조 대법원장이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한 손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으로 제청됐다.

민주당은 이를 '대통령 패싱' '사법농단' '무법 사법 행위'로 규정하며 조 대법원장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조 대법원장이 '법기술원장' '해방 이후 최악의 대법원장'이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법조계에선 조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이 탄핵 사유로는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면 제청을 했다는 것만으로 탄핵 사유가 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헌법에서는 다른 전제 조건 없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규정하고 있다"며 "법원조직법에서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거칠 것을 요구하는데, 추천위를 거쳤으니 실제 위헌·위법적인 행위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탄핵 사유에는 전혀 해당이 안 된다"며 "헌법상 명시된 각자의 권한을 행사하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20일 성명서를 통해 "(대법관) 제청의 주체는 대법원장이며, 그 방식이 대면이든 서면이든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이를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며 "대면 제청이란 오래된 것도 아닌 하나의 관행일 뿐, 결코 법적 의무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 협의·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은 헌법은 물론 어느 법에도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청와대와 대법원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갈등 상황을 더 심화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 교수는 "정치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도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과 갈등이 상당히 심각했는데도 이런 파국은 맞지 않았다"며 "그런데 지금 이 파국의 책임은 (청와대와 대법원) 양 기관 모두 있는 상황에서, 여당으로서는 그 갈등을 조정 또는 조율해야 하는데 (탄핵을 언급함으로써)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헌법기관끼리 협의를 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 윤리로써 아름다운 모습이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다만 "이 관행이 유신체제에서부터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해 밀실에서 이뤄지는 것이었는데, 여당에서 이 관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행 위반이다', '대통령을 무시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민주 사회의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에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26명의 대법원이 증원되는 상황을 앞두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힘겨루기' 차원에서 이 같은 갈등이 지속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국면에서 대법원장이 대통령 뜻대로 따를 경우 앞으로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사실상 무력화돼 사법권 독립이 침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조 대법원장이 서면 제청이라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라는 취지다.

반면 내년 6월 5일 임기가 만료돼 앞으로 천대엽 대법관 후임 후보자 1명만 제청을 할 수 있는 조 대법원장이 굳이 차기 대법원장의 제청권까지 고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오히려 이번 갈등 상황은 대법원이 2025년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하면서 벌어진 갈등 상황의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다.

ho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