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명 대피' 청주 산부인과 화재…대법 "시공업자와 관리자 모두 책임"
"화재 사건서 정황·간접사실 종합해 책임 인정 가능"
- 문혜원 기자
(서울=뉴스1) 문혜원 기자 =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불이 나 신생아와 산모 등 120여 명이 대피했던 화재 사건에서 전기 시공업자뿐 아니라 관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9일 업무상 실화, 전기공사업법 위반,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시공업자 A 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업무상 실화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시설과장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에 대해서도 파기환송했다.
A 씨는 전기공사업 등록·자격이 없는 건설업체 대표자로, 2022년 3월 산부인과 주차장에서 수도배관 열선 설치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안전확인 표시제품을 쓰지 않고 직접 자재를 구매해 자체 제작한 수도 동결 방지기(열선) 제품을 썼다. 또 열선을 마감할 때 화재 위험성이 높은 비닐 절연 테이프를 사용하기도 했다.
A 씨는 사건 공사 과정에서 전기 차단기가 여러 번 작동되는 등 공사에 이상이 있었다고 인지할 만한 정황이 있었는데도 이를 B 씨에게 알리지 않았다.
B 씨는 공사가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선을 콘센트에 꽂았고 열선 말단부에서 불꽃이 일어나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병원에 있던 신생아와 산모, 직원 등 120여 명이 긴급 대피했고 신생아와 산모 45명은 연기를 마시거나 놀라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산부인과뿐 아니라 인접한 모텔 등 건물 3채가 불탔다.
A 씨와 B 씨는 공동해 업무상 과실로 시가 20억 2800만 원 상당의 건물 3채를 불태웠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B 씨가 전기공사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A 씨에게 수도배관 열선 설치 공사를 맡기고 공사가 완료되지 않아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선을 콘센트에 연결해 화재를 유발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B 씨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1심에서 인정된 업무상 실화죄를 모두 무죄로 뒤집었다. 2심은 A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에게만 적용된 전기공사업법 위반,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유죄로 인정됐다.
2심 재판부는 "A 씨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B 씨의 주의의무 위반과 화재 발생 사이에 형사상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화재를 예견하거나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업무상 실화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화재는 B 씨의 관리 범위 내에서 그의 지시에 따라 A 씨가 설치한 통상의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전기장치에서 발생한 것임이 명백하다"며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화재의 발화 원인이나 구체적인 과정을 단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화재는 B 씨의 업무상 과실과 A 씨의 업무상 과실이 경합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화재 사건에서 발화 메커니즘이 직접 증거로 규명되지 않아도 정황·간접사실을 종합해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한 사건"이라며 "무등록 시공업자에게 공사를 맡긴 관리자 측 과실도 함께 인정해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한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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