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명 대피' 청주 산부인과 화재…대법 "시공업자와 관리자 모두 책임"

"화재 사건서 정황·간접사실 종합해 책임 인정 가능"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가 4일 오전 충북 청주 산부인과 병원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2022.4.4 ⓒ 뉴스1

(서울=뉴스1) 문혜원 기자 =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불이 나 신생아와 산모 등 120여 명이 대피했던 화재 사건에서 전기 시공업자뿐 아니라 관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9일 업무상 실화, 전기공사업법 위반,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시공업자 A 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업무상 실화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시설과장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에 대해서도 파기환송했다.

A 씨는 전기공사업 등록·자격이 없는 건설업체 대표자로, 2022년 3월 산부인과 주차장에서 수도배관 열선 설치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안전확인 표시제품을 쓰지 않고 직접 자재를 구매해 자체 제작한 수도 동결 방지기(열선) 제품을 썼다. 또 열선을 마감할 때 화재 위험성이 높은 비닐 절연 테이프를 사용하기도 했다.

A 씨는 사건 공사 과정에서 전기 차단기가 여러 번 작동되는 등 공사에 이상이 있었다고 인지할 만한 정황이 있었는데도 이를 B 씨에게 알리지 않았다.

B 씨는 공사가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선을 콘센트에 꽂았고 열선 말단부에서 불꽃이 일어나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병원에 있던 신생아와 산모, 직원 등 120여 명이 긴급 대피했고 신생아와 산모 45명은 연기를 마시거나 놀라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산부인과뿐 아니라 인접한 모텔 등 건물 3채가 불탔다.

A 씨와 B 씨는 공동해 업무상 과실로 시가 20억 2800만 원 상당의 건물 3채를 불태웠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B 씨가 전기공사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A 씨에게 수도배관 열선 설치 공사를 맡기고 공사가 완료되지 않아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선을 콘센트에 연결해 화재를 유발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B 씨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1심에서 인정된 업무상 실화죄를 모두 무죄로 뒤집었다. 2심은 A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에게만 적용된 전기공사업법 위반,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유죄로 인정됐다.

2심 재판부는 "A 씨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B 씨의 주의의무 위반과 화재 발생 사이에 형사상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화재를 예견하거나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업무상 실화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화재는 B 씨의 관리 범위 내에서 그의 지시에 따라 A 씨가 설치한 통상의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전기장치에서 발생한 것임이 명백하다"며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화재의 발화 원인이나 구체적인 과정을 단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화재는 B 씨의 업무상 과실과 A 씨의 업무상 과실이 경합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화재 사건에서 발화 메커니즘이 직접 증거로 규명되지 않아도 정황·간접사실을 종합해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한 사건"이라며 "무등록 시공업자에게 공사를 맡긴 관리자 측 과실도 함께 인정해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한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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