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반해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각하'한 1심…대법 "다시 재판"

1심, 청구권협정 근거로 본안 판단 안해…2018년 대법 전합 판례 반해
대법 "개인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 아냐"…日 기업 면책 주장도 배척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 뉴스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일본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각하해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결론을 내린 하급심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강 모 씨 등 9명이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 홋카이도탄광기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의 각하 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환송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판결로 해당 사건은 1심인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돼 다시 재판하게 된다.

일본 강제 동원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재산상속인인 원고들은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과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들의 청구를 본안 판단 없이 각하했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제한되거나, 소송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본 것이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 절차를 종료하는 결정이다.

이 같은 판단은 지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춘식 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고 피해자에게 각각 1억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한 것과 배치된다.

당시 1심 판결문에는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원고 측 주장에 관해 "당시 낙후한 후진국 지위에 있던 대한민국과 이미 경제 대국에 진입한 일본 사이에 이뤄진 과거 청구권 협정을 현재 잣대로 판단하는 오류"라고 지적하는 내용이 담겼다.

더 나아가 "당시 대한민국이 청구권 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국제중재에서의 패소 가능성이나 국격·국익 훼손 우려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원고들의 청구가 곧바로 각하될 사안은 아니며, 손해배상 책임 여부를 본안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심은 2018년 대법원 전합 판례를 근거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 역시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국제재판관할, 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일본에서 회사 갱생 절차를 거쳐 채무가 다 면책됐다는 홋카이도탄광기선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해당 면책 효력은 원고들이 이 소송을 제기하는 데 미치지 않았다"며 "면책 효력을 허용한다면 홋카이도탄광기선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실질적 판단도 없이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의무를 면제시키는 결과가 된다. 이는 대한민국의 사회 질서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