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국가기관 논리 총동원"…엘리엇 ISDS 승소 '숨은 주역' 3인
[인터뷰] 민경원 검사·정홍식 교수·김갑유 변호사
저녁먹다 판결 받고 '환호'…"남은 절차 배상 최소화 집중"
- 김종훈 기자, 한수현 기자, 남해인 기자, 송송이 기자
(서울=뉴스1) 김종훈 한수현 남해인 송송이 기자 = 지난달 15일 오후 8시쯤 저녁 식사 중이던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 직원들은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우리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 취소소송 승소 판결문의 초안이었다.
영국 법원은 선고 전 판결문을 사건 당사자에게 보내 오류가 없는지 점검하고 이를 확정하는데, '우리 정부 주장을 받아들여 사건을 중재절차로 환송한다'는 승소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 메일을 읽은 직후 민경원 검사(사법연수원 42기)를 비롯한 법무부 직원들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소송이 모두 타국 법원에서 이뤄지고, 해외 로펌과 소통할 일이 잦다 보니 매일 야근을 하며 쌓인 피로도 눈녹듯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민 검사는 "한때는 싱가포르, 영국, 미국에서 각각 소송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며 "외국 로펌은 업무 시간에 맞춰 메일을 보내는데 우리나라는 새벽 1시라도 바로 서면을 봐서 보내야 하니 하루에 3~4시간밖에 못 자고 출근하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민 검사는 "판결문을 보고 이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든 감정은 '다행이다'였다"며 "졌다면 바로 배상 의무가 확정되고 이자와 소송 비용을 다 물어줘야 했기 때문에 불안감이 컸다"고 말했다.
이 낭보는 지난 23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국민들에게 알리기 전까지 약 한 달간 대외비에 부쳐졌다. 그 사이 민 검사와 조아라 국제투자분쟁과장, 권정우 법무관, 윤동민 법무관 등은 판결문 분석에 집중했다.
지난 2년간 소송 절차 전반을 지휘한 정홍식 전 법무부 초대 국제법무국장(현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과, 론스타에 이어 엘리엇 사건에서도 정부 측 대리인단으로 참여한 김갑유 피터앤김 대표변호사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이번 승소로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등 투자활동이 ISDS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리를 확립한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환송 중재절차가 남은 만큼 배상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열린 취소소송 변론기일에 참석한 정 전 국장은 엘리엇 측의 주장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헌법에서의 내용뿐만 아니라 설립 관련 법률, 국민연금의 특징을 비롯해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논리는 다 댔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조약을 위반한 정부의 조치가 존재하고 그런 조치로 인해 투자자에게 직접적인 손해가 생겼다는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비로소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것"이라며 "중재판정에서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기관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했기 때문에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제가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엘리엇 상대 ISDS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 승리하며 지난 2023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가 엘리엇에게 지급하라고 판단한 배상원금과 그 지연이자를 포함해 약 1600억 원(올해 2월 기준)의 배상책임을 피하게 됐다.
특히, 국민연금공단은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우리 정부 측 논리를 영국 법원이 인정하면서 국민연금공단은 각종 외국 투자사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ISDS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정 전 국장은 "최대 성과는 1200개 이상 기업에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이라는 점이 부인돼 ISDS에 제소될 우려 없이 연금이 자유롭게 운용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변호사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중재 사건에서 이기는 경험을 축적했다"며 "국제분쟁에서 정당한 이익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보여준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엘리엇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번 취소소송 선고 결과에 대해 3주 안에 항소할 가능성도 있다. 영국 법원의 항소절차는 통상 12~18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이 경우 지난한 싸움이 예상된다. 엘리엇이 항소를 하지 않아 환송중재절차로 돌아가더라도 배상책임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남아있다.
환송중재절차에서는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던 엘리엇이 입은 손해에 정부의 결정이 얼만큼 영향을 미쳤는지와 청와대·복지부·국민연금공단 간 연결고리를 영국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지난 2018년 엘리엇은 당시 삼성물산의 주주로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반대했으나 합병이 성사되자,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의결권 행사 등을 문제 삼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ISDS를 제기한 바 있다.
그 결과 국민연금공단의 국가기관성이 부정됐지만,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등 정부 측이 국민연금공단에 합병 찬성 압력을 넣은 점을 인정한 2022년 대법원의 판단은 엘리엇 측에 유리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민 검사는 "그게(외압이) 있었을 때 국민연금이 찬성 의결을 안 했을 가능성, 국민연금이 찬성 의견을 냈더라도 합병이 가결되지 않았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등이 고려될 것"이라며 "다만 손해 산정 방식은 다양해, 이 자체가 중재 절차에 쟁점으로 다뤄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전 국장은 배상책임과 관련해 "배상액이 더 커질 수는 없지만, (지연)이자는 계산이 된다"며 "향후 '얼마나 감액을 시킬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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