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추진 후폭풍…"4심제로 소송지옥" vs "기본권 보장"
대법 "위헌 소지, 남소 우려" 헌재 "잘못된 재판 바로잡기"
재판소원 인용률 1%…"헌법화 정도, 과잉·과소 면밀히 검토"
- 박응진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법원의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재판소원' 제도의 도입 여부를 놓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국민의 기본권을 더욱 충실하게 보장하기 위해 재판소원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사실상 '4심제'에 따른 재판 장기화와 비용 증가 등으로 '소송 지옥'이 벌어질 수 있단 우려가 충돌하고 있다.
기본권 보장과 헌법 가치 확산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인용률이 1% 안팎에 그치고 있는 해외의 재판소원 제도 도입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3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1심 판결과 2심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각각 항소, 상고할 수 있다. 최종심인 대법원에서까지 법률적으로 다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이들 법원의 각 재판 결과들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통한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법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사람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과 대법관을 증원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주도로 가결됐다. 향후 국회 본회의에서 이 개정안이 가결되면 기존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 제외돼 있던 법원의 재판이 포함돼, 헌재에서 재판의 위헌성 또는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툴 수 있게 된다.
이를 놓고는 법원의 잘못된 재판으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이들이 헌재의 판단으로 구제받을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후 명백한 기본권 침해가 발견되더라도, 수십 년이 걸리는 재심 절차 외에는 바로잡을 방법이 없는 기본권 구제의 사각지대가 존재해 왔다는 점에서다.
헌재는 지난 13일 언론에 배포한 참고 자료를 통해 "헌법소원의 대상인 공권력의 행사에 입법, 행정과 달리 법원의 재판만 제외하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라며 "재판이 헌법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내부적으로는 심급제도를 통해, 외부적으론 헌법재판 권한을 가진 헌재를 통해 교정하는 것이 이원적 사법 체제를 택한 우리 헌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기본권을 보호하는 권한을 가진 헌재가 그동안 사실상 사각지대에 있던 사법권을 견제해 보다 촘촘한 기본권 보장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사실상 '4심제'가 됨에 따라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보다 많이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변호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부유층이나 기업, 헌재 출신 전관 변호사만 이 제도의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2일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재판소원 제도에 등에 대해 "그 결과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문제"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법원행정처도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실질적·규범적으로 4심제 도입에 해당하며, 재판 지속과 반복으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거의 모든 사건에서 재판 종결이 늦어지고 소송비용만 과다하게 발생하는 고비용·저효율 제도"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헌재는 "재판소원 중 전원재판부에 회부되는 사건은 헌재의 판단이 중요한 헌법적 의미를 가지거나 기본권 보장에 필요한 경우에 한정되므로, 분쟁의 종국적 해결 지연을 들어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헌법의 최고규범성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어 "분쟁의 해결이 다소 지연된다고 하더라도 재판이 기본권의 내용과 가치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하거나 헌법·법률을 위반하는 오류를 범했다면 이는 반드시 시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때는 분쟁의 신속한 해결보다 위와 같은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원행정처는 재판소원 제도에 위헌 소지도 있다고 본다. 헌법 101조는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불복이 있다고 대법원을 넘어 재판을 거듭하면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또 개정안이 제시하는 재판소원 허용 사유가 한정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개정안 내용 중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라는 요건에 관해 "사실상 제한 없이 재판소원을 청구할 수 있어 남소 우려가 크다"는 게 법원행정처의 설명이다.
반면 헌재는 재판소원 제도가 위헌이라거나,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은 헌법상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헌법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헌법소원의 대상을 입법이나 행정의 작용에 국한하고 있지 않다"며 "이로써 재판소원의 헌법적 근거는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소원이 도입되더라도 대법원이 헌재의 하위 기관이 되는 것이 아니고, 헌재와 대법원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고유 기능에 따라 헌법재판권과 구체적 사건에서 재판권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한 국가로는 독일(1951년·이하 도입 연도), 스페인(1979년), 대만(2018년)이 있다. 각각 우리의 헌재에 해당하는 기관들에 매년 약 2000~1만 건의 재판소원 사건이 접수되며, 인용률은 1% 안팎 수준이다.
이들 국가에서 재판소원 제도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10년 이상 소요되는 사례가 보고되는 등 느린 사건 처리 속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독일 등은 무분별한 재판소원을 막기 위해 사전심사 제도를 시행 중이다. 독일의 경우 2007년 법 개정을 통해 청구인이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포함한 적법 요건을 모두 주장·입증하도록 요구했다. 청구인이 이 요건을 증명하지 못하면 지정재판부가 곧바로 각하 결정을 선고할 수 있다.
입법조사처는 "독일, 스페인과 대만의 헌재는 매년 수천 건에 달하는 재판소원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나, 그중 위헌성이 인정되는 비율은 1% 정도에 불과하다"며 "만약 어떤 나라의 헌법화 정도가 전체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면 이러한 비용을 감내할 가치가 있을 것이지만, 헌법적 가치가 국가 전체적으로 충분히 확산돼 있는 상태라면 이러한 비용을 지출하고서까지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결국 우리나라에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의 헌법화 정도가 과잉 상태인지 과소 상태인지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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