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 사태' 없는데 노태우보다 중형…법원의 판단 기준은 달랐다

한덕수 1심 징역 23년…노태우 1심 징역 22년 6개월보다 무거워
"'친위 쿠데타' 위험·국제 위상 변화…과거 내란과 비교 못해"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1심에서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의 구형(징역 15년)을 훨씬 뛰어넘는 징역 23년을 선고받으면서 과거 군부 내란 사건에서의 형량이 재조명됐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 전 총리와 같은 혐의(반란 중요임무 종사 등)로 재판에 넘겨졌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6년 8월 26일 1심에서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은 2심에서 징역 17년으로 감형된 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졌던 과거 내란 사건보다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인명 피해 없이 6시간여 만에 종료된 12·3 비상계엄을 과거 군부 쿠데타 내란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및 위증 등 혐의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5.9.30/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내란죄 성립 여부, 양형을 따질 때 유혈 사태 발생 여부나 과거 사건과의 형량 비교를 쟁점으로 삼지 않았다.

한 전 총리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12·3 비상계엄을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 쿠데타'로 규정하며, 군부가 권력 바깥에서 무력을 동원했던 과거 내란 사건들과 명확히 구분했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한 채 내란 행위를 저지를 경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념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이유로 과거 내란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12·3 내란의 형량 산정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군부 쿠데타형 내란과 달리 이미 헌법 권한을 가진 권력이 헌정 질서를 파괴의 수단으로 사용한 경우 그 파급력·위험성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12·3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짧은 시간 안에 종료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를 가담자들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무장한 계엄군에 맞서 국회를 지켜낸 시민들의 저항과 국회의 신속한 계엄 해제 의결, 위법한 명령에 소극적으로 응하거나 저항한 일부 군·경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결코 내란 가담자들의 공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달라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도 고려 대상으로 언급했다. 재판부는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고, 국제 무역·국제 정치 등에서 그 위상도 기존과 비교할 수 없다"며 "'친위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사실로 받게 될 경제적·정치적 충격은 기존 내란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판단은 다음 달 19일 선고를 앞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에서도 내란의 성격과 책임 구조를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기준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번 판결은 군부 쿠데타 내란과 선을 그어놓고 판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중형이 선고된 주요한 판단 요소였던 만큼 다른 내란 사건과 상급심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