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사태에 백기 든 검찰총장 대행…13년 만에 반복된 검란의 흑역사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 대장동 항소포기 후 檢 내부 집단 반발에 사퇴
검찰 항명 사태로 물러난 심재륜 전 고검장·한상대 전 총장 재조명

'대장동 항소 포기'로 검찰 내부에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5.11.12/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대장동 민간업자 개발 특혜 의혹 사건 1심 판결 항소 포기로 내부 집단 반발 사태에 직면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결국 사의를 표명하면서 이른바 '검란'(檢亂)의 흑역사가 되풀이됐다. 노 대행은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놓고 검찰 내부의 항명사태로 사퇴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 이후 13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검찰 수장이 됐다.

대검찰청은 13일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금일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대장동 민간업자 개발 비리 의혹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의 거취 결정이다.

노 대행은 지난 7일 자정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 포기를 결정한 이후 이에 관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 내부에서 사퇴 압박을 받았다. 항소 포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진수 법무부 차관 등과 의견을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 대행에 대한 사퇴 요구는 검찰 전체의 집단 항명으로 번졌다.

앞서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수사·공판팀 검사들은 항소 기한 만료까지 약 3시간만을 남겨둔 시점에 대검으로부터 항소 불허 결정을 통보받았다. 논란은 항소 포기 과정에서 이른바 법무부 윗선에서 항소 포기 지시가 하달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일 오후 11시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 질의가 종료된 뒤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을 항소하겠다는 대검의 의견을 보고받고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취지로 의견을 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노 대행을 비롯한 대검 지휘부는 항소를 포기할지 고심한 끝에 7일 오후 11시쯤 법무부에 항소 포기 결정을 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중앙지검 공판5부 검사들은 항소 기한이 만료되기 약 3시간 전인 7일 오후 8시 45분쯤 대검의 항소 불허 결정을 전해 듣고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 기한인 8일 0시까지 검찰의 항소장은 법원에 접수되지 않았다.

수사·공판팀이 항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대검 수뇌부가 법무부의 의견을 듣고 불허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면서 검찰 내부에선 노 대행이 사퇴해야 한다는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전국 검사장 18명이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해명을 요구한 데 이어 총장 대행의 핵심 참모인 대검 부장(검사장)들까지 용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노 대행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여기에 대검 과장급 검사들과 일선 지청장, 신임 검사를 교육하는 법무연수원 교수들까지 노 대행을 압박하면서 집단 항명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발표가 예정된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재경 민정수석과 허원제 정무수석이 굳은표정으로 담화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2016.11.29/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노 대행은 한 전 총장 사퇴 이후 13년 만에 항명 사태로 물러나는 검찰 수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대행의 사퇴로 검란의 어두운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과거 대표적인 검란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검찰 사상 최초의 검란으로는 1999년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항명 사건이 꼽힌다. 심 전 고검장은 '대전 법조비리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종기 변호사로부터 떡값과 향응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그는 이 변호사와 대질신문을 위해 대검에 출석하라는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명령에 불복하고 근무지를 이탈해 상경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수뇌부가 자신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후배 검사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며 "정치권력에 영합하는 검찰 수뇌부도 함께 퇴진하라"며 검찰 수뇌부의 동반 퇴진을 촉구했다. 당시 검찰 수뇌부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심 전 고검장을 '근무지 이탈'을 이유로 파면시켰다.

그러나 심 전 고검장은 불복 소송을 통해 대법원에서 최종 무효 판결을 받고 복직했다. 그러나 5개월여 만에 후배들을 위한 선택이라며 돌연 자진 사퇴해 조직을 떠났다. 심 전 고검장은 검찰 내 대표 특수통이자 '재수사 전문검사'로도 명성이 높았다. 자신의 오랜 특별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부 검사가 갖춰야 할 덕목을 정리한 '수사십결'(搜査十訣)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항명 사태로는 2012년 11월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검사(검사장) 간 대립이 꼽힌다. 당시 한 전 총장은 중수부 폐지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을 추진했고 이에 반대한 최 전 검사장을 상대로 감찰을 지시했다. 전국 검사들은 감찰 지시가 부당하다며 한 전 총장에 대한 퇴진을 촉구했고 한 전 총장은 그해 말 조직 내부 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듬해 4월 박근혜 정부 들어서 중수부는 전면 폐지됐지만 최 전 검사장은 이후 전주·대구·인천지검 검사장 등을 거쳐 2016년 11월 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되면서 민정수석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임명된 지 한 달여 만에 물러났다.

younm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