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보완 수사 사례 잇따라 공개하는 檢…검경 '보완수사권' 기싸움

최근 3년간 검찰 보완수사요구 건수, 비슷한 수준 유지
검 "보완 수사만이 가능한 사건들"…경 "檢 직접 수사 개시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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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한수현 기자 =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안이 확정된 이후 최근 전국 검찰청에서 보완 수사 끝에 기소 혹은 불기소하거나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한 사건들이 다수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이어지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논란에 대한 반박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이 검찰개혁을 전후해 보완수사권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자 검찰이 보완 수사 사례를 연이어 공개하며 이른바 검경 간 기싸움도 벌어지는 모양새다.

사기, 무고 혐의 등 검찰 '직접 보완 수사' 기소 사례 다수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은 30대 남성 A 씨를 사기 혐의로 지난달 29일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A 씨는 2023년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중고나라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에 OTT 구독권, 아파트 월 주차권, 백화점 상품권 등을 판매한다는 글을 게시하고 연락 온 피해자 16명으로부터 3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일부 피해자에게 피해금을 변제했기 때문에 돈만 받고 잠적할 의사는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A 씨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검찰은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같은 이유 등을 들어 "추가 수사가 필요 없다"는 재수사 결과를 통보했다.

이후 검찰은 직접 보완 수사를 하기 위해 불송치 사건에 대한 송치를 요구했고, 검찰은 입금 계좌에 대한 영장을 청구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뒤 A 씨가 '돌려막기'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이 지적장애인을 횡령 혐의 피의자로 특정해 사건을 송치했으나, 검찰의 직접 보완 수사를 거쳐 실제 범행을 사주한 공범을 기소한 사건도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해 5월 경찰로부터 업무상 횡령 혐의로 송치된 B 씨 사건을 직접 수사해 무혐의 처분하고, 범행을 사주한 지인 C 씨를 지난해 8월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검찰은 경찰에 두 차례에 걸쳐 보완 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B 씨를 기소 의견으로 재차 송치했다.

검찰은 보완 수사 중 B 씨의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을 거쳐 C 씨가 대화 내용을 조작하는 등 정황을 확보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C 씨는 징역 8개월이 확정됐다.

이 밖에도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보고 불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보완 수사를 통해 무고 혐의 피의자를 재판에 넘긴 사건도 있다.

서울동부지검은 오피스텔 관리단 부회장 D 씨를 무고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D 씨는 2023년 11월 오피스텔 관리사무소 소장과 경리가 '자신 명의의 현금인수 확인서 32매를 위조해 행사했다'는 취지의 허위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D 씨가 제출한 민간 기관의 필적감정 결과만을 토대로 불송치 결정했다. 고소인은 이러한 경찰 결정에 이의신청했고, 검찰은 추가 증거를 확보해 D 씨의 자백을 이끌어냈다.

'민생 범죄' 공통점…검찰 통해 공개돼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각 지방검찰청을 통해 알려졌다. 각 지검 등은 언론 알림 등을 통해 이 같은 사건을 소개했다. 또한 민생 관련 범죄 사건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아울러 지난달 31일 대검찰청이 선정한 9월 형사부 우수업무 사례 중에서는 송치 직후 약 2개월 간의 보완 수사를 통해 관련자 전원을 재조사하고, 회계 분석 등으로 자금흐름을 확인해 거래 가장 사실을 확인한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 수사팀 사례 등이 포함됐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에서 각 처분에 대해 언론을 통해 알리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최근 알려지는 사례들을 보면 검찰의 보완수사권과 관련된 사례들이 연달아 알려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부터 유사한 사례들이 있어 왔지만, 실제 건수나 사건으로 봤을 때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관련 사례가 늘어난 것은 사실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3년간 경찰의 송치·불송치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요구 건수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검 등에 따르면 경찰 송치 사건 중 검찰이 보완 수사를 요구한 사건 비율은 △2022년 10.39% △2023년 9.59% △9.84%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불송치 송부한 사건 중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한 사건 비율은 △2022년 10.39% △2023년 3.06% △2024년 2.61%인 것으로 나타났다.

"억울한 피해자 늘어날 것" vs "기존 검찰 수사권 유지되는 결과"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두고 검찰과 경찰에서는 치열한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안미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지난 5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개최한 '검사의 보완수사권,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사건당사자가 검찰이 직접 수사해 줄 것을 요청하는 사건의 경우 과연 입법자의 결단으로 인해 정작 사건 당사자는 검찰에서 직접 진술하길 원함에도 이러한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이 온당한가 문제 된다"고 지적했다.

안 검사는 "무엇보다도 기록상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경우 그에 대한 보완수사요구는 불가능하지만, 검찰에서 직접 사건 당사자의 진술을 들어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부분도 있다"며 "최근 계부를 스토킹으로 고소한 사건의 피해자가 검찰에서 수년간 계부로부터 성폭행당한 사실을 진술하여 인면수심의 계부를 구속한 사례가 바로 이러한 경우"라고 밝혔다.

이어 "검찰의 보완 수사만이 가능하거나 검찰의 보완 수사를 존치해야 할 필요성이 큰 사건"이라며 "이런 경우로 한정해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인정하는 제한적 열거 조항 형태로 입법을 하면 검찰의 보완수사권 전면 박탈로 인해 초래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안 검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대상 국정감사에 출석해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반면 송지헌 서울경찰청 수사부 경정은 이날 토론회 패널로 참석해 "송치 사건에 대한 검사의 직접 보완 수사는 검사가 수사권을 행사하는 시점만 수사 개시에서 송치 이후로 지연되었을 뿐, 검사가 원하는 사건을 제한 없이 수사해 원하는 대로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검사가 직접 개시한 사건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검사는 송치 사건과 직접 관련성이 있으면 별건 인지도 할 수 있어 직접 보완 수사라 해도 표적 수사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검사의 직접 보완 수사가 영장청구권·기소권과 같은 독점적 권한과 결합한다면 기존 검찰 수사의 파괴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검찰의 직접적인 보완수사권을 폐지하고, 보완수사요구권만을 남겨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박 본부장은 지난 9월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수사·기소 분리라는 대전제에서 직접 보완수사는 수사의 일환이기 때문에 보완수사요구권으로 일원화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수사·기소 분리로 설계된 공소청에서 보완수사 요구가 실질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담당 경찰관 교체 요구나 징계 요구권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h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