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소지' 서울대생 40년 만에 무죄…"범죄자 굴레 벗어 다행"(종합)
마르크스 '자본론' 소지 혐의…올해 초 진실화해위 진상규명 결정
절차 지적한 재심변호사 "檢, 당시 경찰 증인신청…트라우마 유발"
-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김종훈 기자 = 40년 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소지하다가 불법 체포된 70대 남성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재판을 마친 뒤 "범죄자 굴레를 벗게 돼서 다행"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4단독 김길호 판사는 28일 정진태 씨(72)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에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상과 학문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가급적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며 "피고인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등으로 위와 같은 서적을 소지하고 탐독한 것으로 보인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가입해 활동한 스터디 클럽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할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거나 반국가의 목적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폭력 등 가혹행위로 인해 자백이 이뤄졌으며, 영장은 체포된 후 약 한 달이 지나서야 발부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정 씨는 취재진과 만나 "40년 만에 범죄자라는 굴레를 벗게 돼서 다행"이라며 "이제 정식 대한민국 국민이 돼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씨 측 변호인은 무죄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절차적 아쉬움을 표했다. 공판 과정에서 검찰이 재심을 기각해달라고 요청하고, 당시 수사 경찰을 증인으로 신청한 점 등을 비판했다.
이 사건 법률대리를 맡은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는 증인을 신청했다"며 "법원도 무죄를 선고하기는 했지만 증인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공판 절차를 봤을 때 법원도 트라우마 피해자,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며 "검찰의 신청을 받아주는 재판 진행 절차가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1983년 2월 당시 서울대 학생인 정 씨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혐의로 검거된 뒤,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올해 초 해당 사건을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보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정 씨는 서울 관악경찰서 수사관들에 의해 1983년 2월 15일 검거됐다. 같은 해 3월 9일 구속영장이 발부·집행될 때까지 23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았고, 조사 과정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 속에 허위자백을 강요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2월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결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피고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법 구금, 위험한 압수수색을 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했으므로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정 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당시 검찰은 "증거기록과 피고인 주장의 신빙성 등을 종합하여 고려할 때 피고인이 불법으로 체포된 것이 사실로 보인다"며 "피고인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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