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조 재산분할' 깨진 세기의 이혼…'노태우 비자금'이 판결 갈랐다

"노태우 비자금 300억은 법의 보호영역 밖…재산 기여 참작 못해"
최태원 증여 등 재산 처분엔 "분할 대상 아냐"…위자료 20억 확정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2024.4.16/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분할로 관심을 모았던 최태원 SK그룹 회장(65)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64)의 이혼 소송이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아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을 최 회장과 노 관장 부부의 재산 형성에 있어 노 관장의 기여로 본 2심에 관해 "불법 뇌물은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최 회장의 일부 증여·재산 처분에 관해서도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세기의 위자료'로 불렸던 위자료 20억 원은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 "노태우 비자금 300억은 뇌물…법의 보호영역 밖"

대법원은 2심에서 '1조 3808억 1700만 원'에 달하는 재산분할의 핵심 근거로 삼았던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 원을 노 관장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은 1992년 SK그룹(당시 선경)이 태평양증권(현 SK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이 최종현 선대 회장 측에 전달돼 그룹 종잣돈이 됐다고 봤다. 이를 근거로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를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비자금은 노 전 대통령이 재직 중 수령한 뇌물이며, 불법 자금은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면서 이를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뇌물 일부를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함구함으로써 국가 자금 추적·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법원이 '불법원인급여'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법 제746조엔 불법을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했을 경우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의 취지를 이혼을 원인으로 한 재산분할 청구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2심이 정한 재산분할 비율(최 회장 65%, 노 관장 35%)도 다시 산정돼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전체 분할 대상에서 최 회장 명의의 SK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원심 재산분할 비율 산정에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태원 SK 회장 측 이재근 변호사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5.10.1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최태원, 증여 등 재산 처분…"부부 공동재산 형성 관련, 분할 대상 아냐"

이와 함께 대법원은 최 회장이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과 사촌 등에게 증여한 주식과 재산도 분할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은 2014년 한국고등교육재단 등에 SK C&C 주식 9만 1895주, 2018년 최종현 학술원과 친인척 18명에게 각각 SK 주식 20만 주와 329만 주를 증여했다.

또 2012년부터 동생인 최 수석부회장에 대한 증여와 SK 급여 반납 등으로 927억 7600만 원을 처분했다. 최 수석부회장의 증여세 246억 원을 대납하기도 했다.

2심은 이를 부부 공동생활이나 공동재산의 유지·증식과 무관한 행위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재산 처분이 혼인 관계 파탄일(2019년 12월 4일) 이전에 이뤄졌고, 경영권·지배권 확보 등 부부 공동재산 유지와 가치 증가를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친인척에 대한 주식 증여, 최 수석부회장에 대한 증여·증여세 대납은 최 회장이 SK 경영권을 원만히 승계·확보할 수 있도록 양보해 준 최 수석부회장과 사촌들에 대한 보상"이라며 "부부 공동재산 형성·유지와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세기의 위자료 20억은 확정…2심 "혼인 존중 않는 태도"

한편 대법원은 위자료 20억 원 부분은 그대로 확정했다.

앞서 2심은 "최 회장은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마치 배우자 유사 지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며 "상당 기간 부정행위를 계속하며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위자료 산정 근거를 들었다.

지난 2009년 노 관장이 유방암 판정을 받은 점, 2010년 혼외자가 태어난 이후 최 회장이 2011년 일방적으로 가출해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점 등도 위자료 산정에 반영됐다.

이후 지난해 8월 서울가정법원도 노 관장이 김 이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김 이사는 최 회장과 공동으로 노 관장에게 2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 관장이 청구한 30억 원 가운데 3분의 2가 인용돼 상간자 소송으로는 역대 최고액이었다. 김 이사는 판결 나흘 만에 위자료를 지급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