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내세운 與, 속내는 재판 압박?…"독립 침해" 비판 속 자성론도

대법원장 수사 요구·내란재판부 신설 공세
"아니면 말고식 의혹 안돼" 비판 속 법원 자성 목소리도

조희대 대법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5.9.19/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유튜브 방송 내용을 근거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밀어붙이면서 사법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권이 명확한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며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나오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나아가 여권이 겉으로는 개혁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장 수사 요구·재판재판부 신설 공세…"재판 압박 의심"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른바 조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건희 여사 모친(최은순 씨)의 집사로 알려진 김충식 씨 등의 '4자 회동설'을 제기한 유튜브 방송의 신뢰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별다른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빌미로 조 대법원장에 대한 특검 수사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4자 회동설은 조 대법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4월4일) 직후인 지난 4월 7일쯤 한 전 총리와 정 전 총장, 김 씨와 만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처리를 논의했다는 의혹이 골자다.

민주당은 또 내란 관련 사건 재판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에 각각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고 특별영장전담법관을 둔다는 내용의 내란특별법을 추진하며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 다만, 위헌 논란 등이 제기되자, 전담재판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법조계에선 여권이 이같이 다각도로 사법부를 향한 공세를 이어가는 것을 두고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 현직 판사는 "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이 사실상 현재 정국을 리드해 나가는 동력"이라며 "현재 (윤 전 대통령 재판을 하는) 재판부가, 과거 공수처의 수사권에 대한 문제를 삼은 적이 있기 때문에 특검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릴까 봐 재판부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지난 3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판사는 "(민주당과) 다른 판단을 하지 말고, 법원이 굴복하고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법조인은 "결론을 정해 놓고 법원에 '답정너'를 강요하는 것"이라면서 "갑자기 한 전 총리 영장이 기각되니 태도 전환을 해 법원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인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법조계 "삼권에 서열 없어…바꾸고 싶으면 개헌해야"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해 "위헌이라는데 그게 무슨 위헌이냐"라고 발언했다. 이 대통령은 또 '권력에 서열이 있다'면서 임명 권력보다 선출 권력이 우위에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다른 현직 판사는 "사법 행정에 대해선 국회가 통제를 해야 되는 게 맞지만, 재판은 통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원행정처장이 필요한 때 국회에 가서 사법 행정에 대해서는 답변하고 입법 과정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는 입법 활동을 보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이 절대적으로 독립을 시켜놨다"고 했다.

그는 국민은 명백하게 국회에 입법권만 주고, 대통령에겐 국가의 원수 지위와 행정부 수반의 지위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권은 동등하고, 헌법 내용과 다르게 권력 순서를 매기고 싶으면 개헌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주권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것이지, 선출됐다고 해서 주권자 자체가 된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다른 법조인은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임기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이다. 대법원장 한 명의 임기 동안 최소 한 번은 대통령이 바뀌는 것이다.

이 법조인은 "헌법적 설계에는 이유가 있다"면서 "삼권 분립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찾아가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이 더 큰 권력을 가지는 미국의 경우 대법관이 종신제"라고 덧붙였다.

법조계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에 광역단체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여권 정치인들이 사법부 공세의 선봉에 나서고 있는 점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추미애 의원과 법사위원인 서영교·전현희 의원 등은 각각 내년 경기도지사와 서울시장 등 여권의 광역단체장 후보군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 법조인은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 인사들은 치열한 당내 경선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강성 당원들의 사법개혁 요구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자칫 자신의 선거 출마를 위해 무리하게 사법부를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을 주제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9.11/뉴스1 ⓒ News1 허경 기자
법원에 대한 불신도 원인 돼…"판사들 반성해야"

정치권이 법원을 향해 과도한 공격을 하고 있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현실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법개혁 요구가 힘을 얻는 것은 결국 현재 재판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쌓여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현직 부장판사는 "사법 불신의 벽이 높다면, 법원도 이런 것은 부족했고 고치겠다는 방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며 "판사 수가 부족하다는 것으로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이 뼈를 깎는다는 다짐으로 각고의 노력을 해 국민들이 더 높은 사법 서비스를 받는다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개혁은 자기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들이 법정에서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대폭 늘려 당사자들과 대화하고 그 내용들을 토대로 판결문을 작성해 공개하는 것을 한 가지 방안으로 제시했다.

또 상고심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심리불속행 기각을 없애고 상고심 판결에도 이유를 다 기재하는 것은 물론 대법원 재판도 공개 변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판사도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충분히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조치를 취했는지 반성해야 한다"며 "재판을 갖고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용납이 되고 있는 것은 결국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2일 전국의 법원장 42명이 참석하는 전국법원장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회의 종료 후 전국법원장회의는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사법개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국회와 정부, 국민과의 소통에 열린 자세로 임하는 한편,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을 위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구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판사들이 사법권의 숭고한 뜻을 과연 평상시에 얼마나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생각하고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한쪽에서 법원을 못 믿겠다고 한다면 그쪽도 국민의 중요한 축이다. 법원도 겸손해야 한다"고 말했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