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홍정기 일병 유족, 2심서 국가배상받았지만…"개값보다 못해" 항의

서울중앙지법 "국가가 유족 5명에게 1900만원 위자료 지급해야"
소송비용 원고 40% 부담 판결…군인권센터 "엉터리 책정"

故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 씨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가배상법 이중배상 금지 개정 및 국가유공자 소송 관련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면담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군 복무 중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렸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아급성 뇌출혈로 사망한 홍 일병의 어머니는 이중배상 금지 조항으로 군 사망사건 유가족들이 보상과 배상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며 22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 개정을 촉구, 여야 대표 면담을 요구했다. 2024.11.19/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군복무 중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가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진 고(故) 홍정기 일병의 유족이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배상금이 터무니없는 수준이라고 반발하며 재판부에 항의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9-3부(부장판사 윤재남 노진영 변지영)는 23일 오후 홍 일병 유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홍 일병의 아버지 홍 모 씨와 어머니 박 모 씨에게 각각 800만 원을, 홍 일병의 조부·조모·형에게 각각 100만 원 등 총 19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전사·순직한 군인의 유족에게 다른 법령에 의한 보상금 외에도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국가배상법이 개정된 후 나온 첫 판결이다. 홍 일병 유족이 국가배상소송을 시작한 지 약 6년 만이다.

앞서 1심은 지난 2023년 개정 전 국가배상법상 군인과 군무원, 경찰 등이 전사나 순직으로 보상받으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근거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었다.

이후 홍 일병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고 홍 일병의 어머니 박 씨는 여야 대표를 만나 이중배상을 금지한 국가배상법 조항 개정을 호소해왔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10일 전사·순직한 군인·경찰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배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군인 등이 직무 집행과 관련해 전사·순직하거나 공상을 입은 경우에도 유족이 재해보상금 외에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개정된 법에 따라 2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지만, 유족들은 인정된 위자료 금액이 터무니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판결이 선고된 후 상심한 채 법정에서 나온 유족들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대화를 나누다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 법정으로 들어가 재판부를 향해 "개값보다 못하다", "차라리 애들을 군대 보내지 말라고 해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큰 소리로 항의했다.

법정 경위가 제지했지만 흥분한 유족들의 항의는 계속 이어졌다.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하던 재판부는 선고를 더 이어가지 못하고 퇴정했다.

임 소장은 "이 사건은 국가배상법이 바뀌는 계기가 된 사건이고 그 후로 나온 첫 판결"이라며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간 홍 일병이 군의 의료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건강권 침해로 사망한 사건인데 유족에게 소송 비용 40%를 물라고 한 것도 기가 찰 일이고 배상금도 엉터리로 책정했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2015년 8월 육군에 입대한 홍 일병은 이듬해 3월 6일부터 구토와 두통을 호소하고 몸에 멍이 드는 증상을 보였다. 군 의무대에서는 홍 일병의 혈소판 감소 문제를 파악했으면서도 응급상황이 아니라고 판단, 홍 일병을 돌려보냈다.

같은 날 민간병원에서는 백혈병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지만 이를 보고받고도 군은 홍 일병을 상급병원으로 보내지 않았고 결국 당해 3월 24일 홍 일병은 사망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20년 9월 군의관의 직무유기와 지휘부의 잘못된 판단 등이 홍 일병 사망을 야기했다고 인정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