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韓 상대 손배소 2심도 승소(종합)

1심, 정부 배상 책임 '첫 인정'→2심, 1심 판단 유지
법원 "당시 국군 살상행위 인정…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은 권리남용"

ⓒ 뉴스1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베트남전(戰) 당시 한국군의 민간 학살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도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3-1부(부장판사 이중민 김소영 장창국)는 17일 응우옌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며 1심과 같이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과 같이 1968년 2월 퐁니 마을에서 원고 본인과 오빠는 총상을 입고 원고의 모친, 언니, 남동생이 살해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살상에 가담한 부대원의 고의나 과실 및 위법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가해 부대원들이 당시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이고, 원고 및 그 가족에 대한 살상행위가 당시 해병 제2여단 1중대에 부과된 작전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적어도 외형상 직무행위로 인정할 수 있으므로 국가 배상법에 의해 그로 인한 원고의 손해에 대해 피고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 내용, 사건의 경위, 사건 이후 피고의 행태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 원금을 4000만 원으로 정한다"면서 "다만 원고가 3000만 100원과 지연손해금만을 청구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3000만 100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국가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원고가 7세에 불과했고 편모 슬하이던 원고가 이 사건으로 모친마저 여읜 점, 국교 단절로 배상청구권 행사가 어려웠던 점, 피고가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위장 공격'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점, 피고가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증거 제출을 거부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다고 보인다"면서 "피고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며 배상책임 이행은 거절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인 1968년 2월 한국군 청룡부대 제1대대 제1중대 소속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 들어가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74명을 학살했다.

이른바 '퐁니 사건' 당시 7세였던 응우옌티탄은 복부에 총격을 입는 부상을 당했고 가족들 역시 죽거나 다쳤다. 응우옌티탄은 지난 2015년부터 한국에서 이 같은 피해 사실을 알리고 2020년 4월 한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23년 2월 1심 재판부는 "한국 군인들이 작전 수행 중에 응우옌티탄의 집으로 가 수류탄과 총으로 위협하면서 가족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고 차례대로 총격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정부는 원고에게 약 3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법원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따른 한국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 소송이 처음이다.

이날 2심 선고 후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다시 한번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 대한민국은 항소심에서 재판의 결과를 뒤바꿀만한 그 어떤 증거 자료나 논거도 보여주지 못했고, 국방부는 오히려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으며 전쟁 관련 책임을 다해야 할 국가의 면모 또한 보여주지 못했다"며 "이번 항소심에서 원고 응우옌티탄의 승소는 지연되었으나 마침내 구현된 정의의 과정이자 결과"라고 덧붙였다.

베트남 현지에서 승소 소식을 접한 응우옌티탄 씨는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너무도 많이 떨렸는데 오늘 승소 소식을 접하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퐁니 학살 사건을 재판부에서 잘 살펴봐 주시고 이런 판결을 내려주셔서 감사드리고, 한국 정부에서도 퐁니 사건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사건 피해자도 살펴봐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