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미쳤어요"…'강제입원' 헌법불합치 나왔지만[세상을 바꾼 법정]㉔
보호의무자 2명 동의+의사 1인 진단으로 입원…헌재 "남용 가능성 커"
위헌성 여전 vs 적정 치료 필요 논란 계속…'사법입원제' 도입 논의도
- 이세현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난 미치지 않았어요"
2016년 개봉한 영화 '날, 보러 와요' 속 주인공 강수아(강예원 분)는 대낮 거리 한복판에서 정신병원으로 강제이송된다.
정신질환이 없다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이는 없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주인공은 꼼짝없이 감금돼 강제적인 약물투여 등에 시달리다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본인의 동의 없는 감금. 그러나 당시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판단이 있다면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강제입원이었지만 합법적인 조치였다.
정신보건법상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는 1995년 '정신질환자 본인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 도입됐지만 재산을 노린 범죄 등 각종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2016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헌재 "강제입원 조항, 남용가능성 크다" 헌법불합치 결정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모씨는 2013년 11월4일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자녀 2명의 동의와 전문의 1인의 입원 진단만으로 화성시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됐다.
박씨는 정신질환이 없는데도 강제로 입원됐다며 법원에 인신보호법에 따른 구제청구를 하고,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014년 5월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당시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은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보호의무자가 1인일 경우에는 1인의 동의)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사건을 접수한 헌재는 2년여의 심리 끝에 2016년 9월29일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보호입원은 정신질환자의 신체의 자유를 인신구속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제한한다"면서 "그런데 정신보건법은 입원치료⋅요양을 받을 정도의 정신질환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고,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타인의 안전'이라는 요건 또한 매우 추상적"이라며 "그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 남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판대상조항이 정한 보호입원 대상은 그 요건이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일 뿐만 아니라, 그 판단마저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은 정신과전문의 1인에 맡기고 있어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심판대상조항은 보호의무자가 정신질환자 본인을 위해 최대한 이익이 되는 쪽으로 판단하리라는 선의에 기초하고 있다"며 "그런데 보호의무자 중에는 정신질환자를 직접 돌보아야 하는 상황을 피하거나 정신질환자의 재산을 탈취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보호입원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 동의권은 제한되거나 부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심판대상조항은 정신질환자의 이익을 저해하는 보호입원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충분히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해당 법조항은 보호입원 대상자의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면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위헌성 남았다"vs"치료 때 놓쳐" 논란은 계속
정신보건법은 헌재 결정 선고 전인 2016년 5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로 전면 개정돼 2017년 5월부터 시행됐다.
문제가 됐던 보호입원 조항은 제43조로 자리를 옮기면서 요건이 강화됐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신청과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보호입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에도 불구하고 보호입원 제도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장애인단체들은 해당 조항이 요건만 조금 더 까다로워졌을뿐 여전히 기본권을 침해하며 위헌성이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전문의 한명의 진단이 추가된다고 해서 본인의 동의 없는 강제입원 남용 가능성이 차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2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및 동의입원 제도를 폐지하고 입원적합성 심사제도와 정신건강심의위원회 구조 등을 개선하는 내용의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등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신건강 관련 법 제정 후 가장 큰 제도적 변화가 될 것"이라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반면 지나친 강제입원 제한으로 적정한 치료시기를 놓치게 된다는 반박 의견도 있다. 중증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강제입원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2018년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9년에는 안인득이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안인득은 과거 조현병 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나 사건 발생 3년전부터 치료를 중단했다. 범행 이전 친형이 안인득을 입원시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최근 신림역 흉기난동, 분당 흉기난동 사건과 같은 '묻지마 범죄'가 연달아 벌어지고, 범인 중 일부가 과거 조현성 인격장애 등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도 치료를 받지 않은 사실들이 알려졌다. 이에 본인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필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정신질환자의 입원여부를 법원이 판단해 강제로 입원시키는 '사법입원제' 도입 검토를 해결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8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금은 (환자)보호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부담이 있다"며 "미국이나 독일은 사법입원제도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제도를 참고해서 개선 방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도 지난 4일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신체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한 만큼 도입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법원이 환자의 입원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점에 대해 적절성과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사법입원제는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적이 있지만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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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