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한동훈 장관의 '정무적 책임', 무슨 의미인가
"정무적 책임 느낀다"는 한동훈 장관, '책임지냐'는 질문엔 "아니오"
검증실패에 관련 기관들 모두 책임회피…변명보단 책임있는 모습 기대
- 이장호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결과적으로 제가 관장하고 있는 기관에서 있었던 것이고 국민께서 우려를 많이 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대해 제가 정무적인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달 28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정순신 사태 책임론'에 대해 내놓은 답변이다. 정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국수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사퇴하면서 인사검증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정무적 책임'이라는 단어는 모호하다. 심지어 그때그때 다른 의미로 쓰였다.
'정무(政務)'는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를 뜻한다. 정무적 책임은 통상 선거로 취임하거나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한, 법률이나 대통령령에서 정무직으로 지정한 '정무직 공무원'이 져야 하는 정치적 책임으로 해석된다. 그럼 '정무적 책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지 과거 정부에서 '정무적 책임'이 언급된 사례를 찾아봤다.
1) 참여정부
2005년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서울대 총장 시절 사외이사 부당 겸직과 판공비 과다사용, 장남의 국적 포기 등의 논란이 불거지면서 취임 4일 만에 사퇴했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은 "정무직은 정무적 책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해당부서 책임자인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에 대해 사표수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2) 박근혜정부
2016년 진경준 전 검사장의 '넥슨 공짜 주식' 보유 논란이 터져나왔을 때 우병우 민정수석이 넥슨코리아가 자신의 처가 강남 땅을 매입해줘 진 전 검사장 논란을 눈감아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던 우병우 민정수석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그때마다 공직자가 그만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정무적으로 책임지라고 했는데 그럴 생각도 없다"며 사퇴설을 일축했다.
이 두 사례를 살펴보면 '정무적 책임'은 정무직 공무원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지난 정부때부터는 '정무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듯 하다.
2019년 12월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이 제기돼 서울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당시 조치에 대한 정무적 최종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조사를 받은 조 전 장관의 이 같은 입장은 '법적으론 책임질 게 없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처한 처지는 다르지만 한 장관의 '정무적 책임' 발언도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읽힌다. 한 장관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취지냐는 질문에 먼저 "아니요"라고 선을 그은 뒤 '정무적 책임'을 언급했다. 책임지지 않는 정무적 책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 장관의 발언이 책임회피성으로 읽히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번 검증 실패의 책임이 지난해 야심차게 도입했던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있음에도, 법무부는 나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이번 사태가 터지자 "특정인에 대한 인사 검증 여부를 확인해 드릴 수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한 장관은 공직 후보자 본인이나 가족의 송사 관련된 부분은 후보자가 거짓 답변을 할 경우 이를 사전에 거르기 힘든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인사검증 시스템의 실패가 과연 시스템 상의 이런 맹점이 원인인지 의문이다.
이번 정 변호사 아들 학교폭력 논란은 이미 2018년 11월 KBS에서 가해자의 아버지가 고위직 검사라고 보도가 나왔던 사안이다. 검찰 내부에서 몰랐을리 없다. 그렇다면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검찰 출신이라 눈감아줬거나, 깜빡 잊어 걸러지지 않았거나. 전자면 문제가 심각하지만, 후자의 경우더라도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인사검증 실패를 두고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검증에서 걸러지지 못 했다는 아쉽다는 반응이고, 경찰은 자신들은 인사검증 권한이 없다고 하고 있다. 법무부는 앞서 말한듯이 인사검증 여부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사적 영역이라 시스템상 검증이 어려웠다는 이해하기 힘든 변명이 먼저 나오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사회는 잘못과 그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에 인색해졌다. 정치적 갈등이 심해지면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마치 상대방 진영에게 공격할 빌미를 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듯 하다. 지난 정부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며 들어선 이번 정부에선 달라진 모습을 기대한다.
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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