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에 무단으로 다시 세운 건물…재물손괴죄 적용될까

1심 징역 8월→2심 무죄→대법 무죄 확정
대법 "소유자가 효용 못 누릴 뿐 효용 자체 침해 없어"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타인 소유 토지에 무단으로 건물을 신축한 행위는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다른 사람 땅에 건물을 지었다가 그 토지를 매수한 새로운 소유자로부터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당해 패소했다.

토지 소유자는 확정된 판결을 바탕으로 A씨의 건물을 철거했지만 A씨는 종전 건물 철거 직후 재차 그 토지에 무단으로 새 건물을 지었다.

검찰은 "토지 소유자의 토지 이용을 방해할 목적으로 권한 없이 건물을 신축했다"며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형법 제366조(재물손괴등)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 문서,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 은닉, 기타 방법으로 효용을 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심은 "A씨의 건물 신축은 토지의 효용을 해하는 행위에 해당하고 A씨에게 재물손괴 고의도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A씨는 본인이 한 행위에 민사적인 책임을 지면 된다"며 재물손괴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2심은 "A씨는 토지 자체에 굴착이나 쓰레기 매립 등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건물 신축공사 과정에서 토지가 손괴됐다거나 형상이 변경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토지 전체가 손괴됐다는 전제로 공소를 제기했지만 토지 일부에 건물을 신축한 A씨의 행위로 토지 전체의 효용이 침해되진 않았다"며 "신축 행위로 토지 매매에 법률상 장애가 생긴 것도 아니고, 토지 전체를 이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도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검찰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물손괴죄는 행위자에게 '불법영득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절도, 강도, 사기, 공갈, 횡령 등 영득죄와 구별된다. 불법영득의사는 남의 물건을 자기 소유물처럼 이용·처분할 의사를 뜻한다.

대법원은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본래의 용법에 따라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소유자가 물건의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됐을 뿐 효용 자체가 침해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인 '재물의 효용 침해' 의미를 명확히 한 판결"이라며 "대상 재물이 '토지'인 경우 토지소유자에 대한 이용방해 행위는 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사례"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par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