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촌오거리' 인정된 경찰·검사 고의·중과실…'삼례'도 인정될까
법원 '약촌오거리' 수사 경찰·검사에 손배 책임 인정"
'삼례 나라슈퍼' 수사검사 책임도 인정될지에 관심
- 이장호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국가는 물론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와 검사의 책임을 인정했는데, 이번달 1심 선고가 예정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사에게도 책임이 인정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약촌오거리 진범 몰린 최씨, 재심무죄 이어 민사소송도 승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판사 이성호)는 지난 13일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피해자 최모씨와 그 가족이 정부, 당시 수사담당 형사, 진범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한 검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약 13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가족들에게는 총 3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약촌오거리 사건은 2000년 8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소재 버스정류장 앞길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다방 배달일을 하던 15세 소년 최씨는 경찰의 폭행 등 가혹행위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고, 재판에 넘겨져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3년 뒤인 지난 2003년 경찰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확보해 재조사에 착수했다. 임모씨는 "사건 당일 친구 김모씨가 피 묻은 칼을 들고 집으로 찾아와 범행을 저질렀다. 자신이 칼을 숨겨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진범 김씨를 조사해 자백을 받아내고, 김씨와 임씨에 대해 강도살인, 범인은닉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검찰에서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 이후 두 사람은 진술을 번복했고 검찰은 2006년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임씨는 2012년께 사망했다.
지난 2010년 3월 만기출소한 최씨는 2013년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6년 11월 "당시 수사·재판과정에서 최씨가 한 자백이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은 선고 4시간 만에 김씨를 체포해 재판에 넘겼다. 김씨는 2018년 징역 15년을 확정받았다.
◇공무원 고의·중과실 인정한 법원
'약촌오거리' 손해배상소송에서 국가는 물론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와 검사의 책임이 인정된 것이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공무원이 직무수행 중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 외에 공무원 개인에게도 손해배상책임을 물으려면 그 공무원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어야 한다. 경과실 책임도 인정하는 일반 손해배상 사건에 비해 요건이 까다로운 것이다.
'약촌오거리' 손해배상소송을 심리한 재판부는 "익산경찰서 경찰들은 영장 없이 최씨를 여관에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폭행하고 임의성 없는 자백 진술을 받아냈다"며 "경찰들은 최씨를 사흘간 잠을 재우지 않은 상태로 수시로 폭행하고 폭언하며 가혹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허위자백 외에는 객관적으로 부합되는 증거가 없는데도 오히려 부합되지 않는 증거들에 끼워 맞춰 자백을 일치시키도록 유도해 증거를 만들었다"며 "사회적 약자로서 무고한 최씨에 대해 당시 시대적 상황을 아무리 고려하더라도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위법한 수사를 했다"고 판단했다.
경찰과 검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서도 수사검사 책임 인정될까
'약촌오거리' 사건에서 공무원들의 고의 및 중과실이 인정되면서 '약촌오거리' 사건과 유사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피해자 3명(삼례 3인조)이 국가와 당시 3인조를 기소하고 진범을 무혐의 처분한 검사였던 최모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결론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모이고 있다.
'삼례' 사건은 1999년 2월 30대 부부가 운영하는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현금 등을 훔쳐 달아나는 과정에서 강도들이 주인 부부의 고모인 70대 유모 할머니의 입과 코를 막아 숨지게 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최모씨 등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던 3명을 범인으로 지목해 체포한 다음 자백을 받아 구속했다. 이들은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가 부산지검에 접수돼 부산지검은 용의자 3명을 검거해 자백을 받아 전주지검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삼례 3인조를 기소한 최 검사는 이들의 자백이 신빙성이 없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형이 확정된 이들은 만기 출소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용의자 3명 중 1명인 이모씨가 진범이라고 양심선언을 했고, 삼례 3인조는 지난 2016년 재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17년 만에 살인의 누명을 벗게 된 것이다.
삼례 3인조와 그 가족들은 국가와 최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선고는 오는 28일 오후 1시50분에 열릴 예정이다.
이들은 당시 사건에 관여한 경찰들과 검사였던 최 변호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었으나, 경찰들은 소송 대상에서 빠졌다.
두 사건의 피해자들을 대리한 박준영 변호사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약촌오거리'의 형사의 경우 반성하기는커녕 증언대에 서지도 않는 등 (행태가) 뻔뻔했다"며 "반면 삼례 사건의 경우 경찰들이 재심서 증언도 해줬고 이미 현장검증 동영상 보도로 많은 비난을 받은 사실 등을 참작해 소송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검사는 진범까지 풀어줬기 때문에 책임추궁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3명을 기소하고 진범을 무혐의 처분한 당시 검사였던 최 변호사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삼례 3인조에게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오는 28일 피해자들이 낸 소송 결론과 함께 최 변호사의 주장에 대한 판단도 함께 이뤄질 예정이다.
법원이 이번에도 사건 수사 검사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의 책임을 인정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지, 아니면 오히려 삼례 3인조가 명예훼손을 했다고 주장하는 최 변호사의 손을 들어줄지는 10일 뒤에 결론이 나올 예정이다.
ho86@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