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그사세①]음주뺑소니에도 교사는 파면, 법관은 감봉

'부당지시' 임종헌, 징계 사유확인 없이 법복 벗어
"정권 안바뀌었다면 13명 징계위 회부 안 돼"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 '키맨'으로 첫 구속자가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 News1

(서울=뉴스1) 윤지원 기자 = 어느 직장이든 소속원에 대한 징계 규정이 있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법원도 마찬가지다. 직무상 의무 위반 혹은 업무를 게을리한 사람에 징계 처분을 내린다.

28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최근 임모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야구선수 오승환·임창용씨 도박혐의 재판에 부당 개입한 혐의로 견책 징계를 받았다. 견책(譴責)은 한자 그대로 꾸짖음에 불과하지만 임 판사는 "재판개입이 아닌 단순 조언"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불복 소송을 냈다. 징계가 너무 낮다는 여론이 빗발쳤음에도 불구하고 임 부장판사의 반발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법관, 그들이 사는 세상에 적용되는 룰은 달랐기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받은 '법관 징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 7월까지 징계를 받은 법관은 단 12명에 그쳤다. 가장 많은 징계 사유는 성범죄였다.

징계 숫자만 적은 것이 아니다. 징계 처분도 비(非)법관 공무원과 비교했을 때 현저하게 낮은 수준에 그친다. 법관 징계법에는 법관의 독립성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파면 조항이 아예 없다. 가장 높은 수준의 징계는 정직 1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되거나 금고 이상의 형사 처벌이 확정되지 않는 이상 법복을 강제로 벗길 방법은 없다.

지난 5년간 징계를 받은 12명의 판사 중 정직은 4건, 감봉은 7건, 견책은 1건이었다. 이중 감봉 4개월 처분을 받은 A판사는 음주운전으로 5명을 다치게 한 뺑소니범이다. 똑같은 뺑소니 범죄를 저질렀을 때 최대 파면 조치되는 교사나 경찰 공무원과는 극명한 차이다. 동일한 비위 행위에는 동일한 잣대가 적용돼야 하지만, 법관들 앞에선 그 잣대조차 구부러지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초유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 의혹으로 전·현직 법관들이 줄줄이 법적 심판대에 서게 되면서 그간 쉬쉬해 온 법관들에 대한 부실한 징계 처분의 문제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미 현직이 아니기에 징계 대상이 아니다. 특히 임 전 차장은 지난해 사법농단 논란의 불씨가 본격적으로 타오르던 시점에 법관 재임용 신청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법복을 벗었다.

법관징계법 제7조의4는 법관이 퇴직을 희망할 때 징계 사유를 확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징계를 받은 판사가 퇴직하면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도 있을만큼 중요한 절차다. 당시 임 전 차장은 법관에 부당한 업무를 지시한 혐의로 진상조사 대상이었지만 징계 사유에 대한 확인을 받지 않고 법원에서 빠져 나갔다.

이는 징계위원회 자체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법관징계법에 따르면 징계위 위원장(1명)과 위원(6명)은 모두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심의를 개시하기 위해서는 대법원장·대법관·법원행정처장 등의 징계 청구가 있어야 한다. 사실상 징계 심의 시작부터 결과가 대법원장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행동대장이라고 불렸던 임 전 차장이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법원을 걸어나간 데엔 양 전 대법원장의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김모 변호사는 "임 전 차장은 어느 정도 비위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에 징계위에 회부될 수 있었지만 법원이 안했다"며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징계위에 회부를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변호사는 "만약 정권이 안 바뀌고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양승태에 이어 대법원장이 됐다면 그조차(13명 징계위 회부)도 안됐을 것"이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재판 개입' 등의 문건을 작성한 혐의로 대법원 징계위에 회부된 현직 판사는 13명인데 이 마저도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는 이유에서 징계 심사 자체가 올스톱된 상태다.

대법원 관계자는 "수사결과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수사가 지연될 경우 수사 종결 여부와 상관없이 징계절차를 진행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y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