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부, 안종범 수첩 '정황증거'로 채택(종합)

특검과 삼성측, 수첩 증거능력 놓고 공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공여' 35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7.7.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이재용 사건 재판부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결정적 증거로 제출한 '안종범 수첩'에 대해 정황증거로 채택하겠다고 결정했다. 진술증거로는 그 능력을 인정할 수 없지만, 수첩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와 대통령과 피고인의 대화내용의 존재를 인식하는 간접사실로서의 증거력은 있다는 판단이다.

내용 자체가 아니라 특정 내용이 수첩에 기록돼 있다는 사실만 증거능력으로 인정해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지금까지 검찰과 특검이 확보한 '안종범 수첩'은 모두 63권이다.

재판부, 안종범 수첩 정황증거로 채택

6일 새벽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에 대한 36차 공판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증인신문을 마무리한 후 "안종범 수첩 기재내용과 같이 대통령과 이재용 피고인이 개별 면담에서 '말'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진술증거로서의 증거능력을 인정 못한다"며 "수첩에 내용이 존재한다는 자체와 대통령과 피고인 사이에 그와 같은 대화내용이 있었다는 간접사실로서의 정황증거로는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 7월2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이뤄진 독대 이후 작성된 안종범 수첩의 '메모'와 관련, 현장에 기록자인 안 전 수석이 없었으므로 그의 메모 내용이 곧 독대 대화내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안종범 수첩'을 유력한 정황증거로 보고 앞으로 심리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검은 당시 독대 자리에 배석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안종범 수첩'이 독대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물증으로 보고 있다. 당시 상황을 녹화하거나 녹음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가 정황증거로만 인정하겠다고 결정하면서, 추후 재판에서 안종범 수첩의 '증명력'을 놓고 특검과 삼성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안종범 수첩'에는 2015년 7월25일 이뤄진 2차 독대와 관련해 '삼성, 엘리어트 대책, M&A 활성화 전개, 소액주주 권익, Global Standard(글로벌 스탠더드), 대책 지속 강구'등의 단어가 독대 이틀 후 수첩에 적혔다. 2016년 2월15일 3차 독대 이후 관련해선 수첩에 '금융지주회사, 글로벌 금융, 은산분리, JTBC, 새마을운동 제대로, 빙상, 승마' 등 13개의 주제가 키워드 형태로 적혀 있다.

특검과 삼성측, 수첩 증거능력 놓고 공방

이날 재판부 판단에 대한 특검과 삼성 양측의 해석에는 온도차가 있었다.

특검은 "안종범 수첩이 말한 것을 직접 듣고 적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술증거로는 채택할 수 없다는 것으로, 그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진술증거가 아닌 '증거물'로서 증거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술증거라고 해버리면 '전문법칙'의 적용을 받아 증거능력이 배제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전문증거 법칙이란 참고인 진술조서나 다른 사람의 증언 등 전문증거(傳聞證據, 체험자의 직접 진술이 아닌 간접증거)는 증거로서 가치인 증거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반대 신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당사자가 직접 법정에서 진술해야 한다는 취지의 형사소송 원칙에 따른 것이다.

특검은 "수첩을 통해 독대 당시 미르재단, 승마지원과 함께 면세점 특허, 중간금융지주사 전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문제 등 여러 얘기가 오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독대 때 금품수수 및 뇌물공여와 명시적 청탁, 혹은 최소한 묵시적인 청탁이 이뤄졌음은 명약관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 측 변호인은 "수첩의 증명력을 살펴보면 '안종범 수첩'은 독대 이후 사후에 (대통령으로부터 말을)전달받아 적은 것으로 배석하지 않은 사람이 사후에 적은 것이라 전달-청취-기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류나 부정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종범 수첩에 의해 독대 당시 내용을 사실인증하는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수첩에 어떤 단어가 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대통령이 무조건 말했다고 볼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재판부께서도 판단하신 바와 같이 이 사건 '안종범 수첩'은 실제로 독대과정에서 그와 같은 대화가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7.7.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한편 이날 공판은 자정을 넘겨 6일 오전 1시6분까지 이어졌다. 이례적으로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안 전 수석은 자신의 수첩 내용은 온전히 박 전 대통령이 불러준 내용만을 적었으며, 자신의 의견을 보탠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자신의 수첩에 본인 사견이 들어간 적이 없고, 키워드 형태로 기재된 깨알 메모들 모두 박 전 대통령이 불러준 내용 그대로라는 취지의 증언이다. 그러면서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관한 메모나 대통령의 언급, 지시 등은 없었다고 특검 주장을 뒤집었다.

이날 특검이 공개한 안종범 수첩 내용에는 최순실, 정유라, 경영권 승계 등의 단어는 적혀 있지 않았다.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이 말이 빠른 편이라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발언을 그대로 적었다"며 "최순실, 정유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박 전 대통령이 말한 적이 있었다면 내가 받아 적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등 특정 기업을 도와주라는 지시나 질문도 받은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see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