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채·두꺼운 덧칠·밑그림' 천경자 고유방식…미인도에도 있다

25년 위작논란 미인도 '진품' 결론…檢 결정적 이유는?
"현 시점에서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감정방법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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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검찰이 25년간 '위작논란'이 지속된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 내린 데는 미인도에서 천 화백만의 제작방식인 '두꺼운 덧칠'과 희귀하고 값비싼 '석채' 안료가 사용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천 화백의 진품에서 나타나는 '다른 밑그림'의 존재를 미인도에서도 찾았다. 또 이 밑그림이 천 화백의 미공개 작품인 '차녀 스케치'와 매우 유사한 점도 미인도를 진품으로 볼 수 있는 근거로 꼽았다.

19일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배용원)는 약 5개월에 걸친 '미인도 위작논란'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미인도는 천 화백이 차녀 스케치를 토대로 그린 진품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그동안 미인도와 천 화백의 진품 13점을 감정하고, 대검찰청·국립과학수사연구소·KAIST를 통해 미인도에 대한 X선·적외선·투과광사진·3D촬영, 디지털·컴퓨터 영상분석, DNA분석 등을 진행했다.

◇ 석채·두꺼운 덧칠·압인선…천경자 화백 제작방식

조사결과 검찰은 미인도가 천 화백의 다수 작품을 거의 전속해 표구해온 D화랑의 화선지와 액자를 사용했고, 제작방식에서 '백반·아교·호분' 성분으로 바탕칠한 후 수 없는 덧칠 작업을 거쳐 석채안료로 채색을 완성했다는 점을 밝혔다.

특히 육안으로는 관찰되지 않는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이 천 화백 진품에 있는 꽃잎, 나비 등 섬세한 표현이 필요한 부분에서 공통으로 식별되는 등 미인도에는 천 화백의 제작방법이 그대로 구현됐다고 했다.

◇ 미인도 그림 밑층에 숨겨진 '다른 밑그림'

검찰은 또 육안으로 관측되는 미인도의 그림 중, 화관 풀잎 밑층에서 다른 형태의 풀잎선, 입술 밑층에서 다른 위치·형태의 입술모양, 머리카락의 밑층에서 숨겨진 꽃그림 등이 발견된 점이 미인도가 진품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밝혔다.

이 밑그림은 계속된 수정을 통해 최초 밑그림이 변형되면서 현재의 미인도로 완성된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천 화백의 특징적인 채색기법은 수 없는 수정과 덧칠을 반복해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그림 밑층에 밑그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천 화백이 1968년에 발표한 진품 '청춘의 문'에서도 밑그림의 존재가 확인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또 위작의 경우 원작을 보고 그대로 베끼거나 약간의 변형을 가한 스케치 위에 단시간 내에 채색작업을 진행하므로 다른 밑그림이 발견되기 어렵고, 위작 주장자가 그린 또다른 모작에서는 표층 화면과 다른 형태의 밑그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 미인도 밑그림…천경자 미공개 '차녀 스케치'와 매우 유사

검찰은 1976년 천 화백이 차녀인 김모씨를 모델로 스케치한 차녀 스케치와 미인도(1977년), '장미와여인'(1981년) 사이에 유사성이 매우 높다는 점도 미인도가 진품인 근거로 들었다.

위작은 원작 없이 소재와 구도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위작은 원작이 있지만, 현재 미인도의 원작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은 발견되지 않았고 차녀 스케치는 2016년에서야 언론에 공개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미인도의 화면 중 앞머리, 눈썹·콧날·목과 쇄골 부위 선, 왼쪽 안륜근, 인중 표현, 풍성한 생머리 밑층의 파마머리 형태 등 육안으로는 관찰되지 않는 세밀한 스케치가 발견되는데 이 스케치 이미지를 차녀 스케치 이미지와 겹쳐보면 세부 표현방식에서 유사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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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차녀 스케치가 장미와여인보다는 미인도와 더 높은 유사성을 보이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차녀 스케치를 바탕으로 미인도, 장미와여인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모사향기'(1977년)-'여인'(1977년), '여인의 시1'(1984년)-'여인의 시2'(1985년)처럼 천 화백의 작품 중에는 동일한 스케치를 여러 작품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 있다고도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컴퓨터 영상분석기법(웨이블릿 변환 분석)을 통해 미인도와 천 화백의 진품을 비교한 결과, 눈동자, 콧방울, 입술 머리카락, 얼굴형 등 6개 세부항목 모두에서 유의미한 차이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기법은 원작을 디지털 이미지로 바꾼 뒤 작가의 화풍·특징에 따른 세부항목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함으로써 유사성과 차이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다만, 미인도에 대한 DNA감정을 실시한 결과 미인도에서 추출된 유전물질 손상으로 '감정불가'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필적 감정결과 역시 '판단불명'으로 회신을 받았다.

여기에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믿을 수 없는 결과'라고 검찰은 판단했다.

뤼미에르 연구팀은 다중 스펙트럼 고화질 촬영카메라를 이용, 그림을 1650개 단층으로 쪼개어 세밀하게 구별하는 방식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속 숨겨진 그림을 찾아내기도 했다.

지난 9월 천 화백의 유족 측은 미인도를 단층으로 분리하면 채색 순서와 붓질 방향 등을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검찰에 뤼미에르 연구팀의 감정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뤼미에르 연구팀의 미인도에 대한 감정에서는 심층적인 단층분석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다. 또 연구팀이 사용한 작품 간 '밝기분포'(명암대조)와 '흰자 위의 두께'(밝기) 계산식을 미인도를 제외한 천 화백의 9개 진품에 그대로 대입한 결과, 진품일 확률이 4.01%, 4.31% 수준으로 계산되기도 했다.

뤼미에르 연구팀은 미인도에 대한 감정결과 명암대조 및 빛의 균형, 눈, 콧방울 등 9개 세부 항목으로 나누어 수치화한 결과 모든 항목에서 천 화백의 진품과 다른 수치가 나왔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미인도는 장미와여인을 보고 제작한 위작으로, 명암대조의 표준편차값 등을 확률계산식에 대입해보면 미인도의 진품 가능성은 0.00002%라고 밝혔다.

검찰은 미인도가 장미와여인의 위작이라는 연구팀의 보고서와 관련, 2개 작품을 별도로 비교·분석한 자료가 없고 미인도의 국립현대미술관 이관 시점 등 명백한 소장이력에 비춰볼 때 모순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과학적인 감정 외에도 교수, 화가, 미술평론가 등 총 9인의 감정위원이 미인도와 천 화백의 진품 12점을 감정한 결과 진품 의견이 우세했다고도 밝혔다.

미인도가 진품에 비해 전체적인 명암대조,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일부 위작의견도 있었으나 석채 사용과 두꺼운 덧칠, 붓터치, 선의 묘사, 밑그림 위에 수정해 나간 흔적 등에서 미인도와 천 화백의 진품 사이에 동일한 특징이 나타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위작의견을 밝히면서도 '표현기법이 달인에 가까운 테크닉으로 작품의 수준이 높다. 견고한 채색기법을 사용해 진품과 안료 상 차이가 없다'는 평가도 있었다고 검찰은 덧붙였다.

검찰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감정방법을 통해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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