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가혹행위 논란 '중앙합동신문센터' 가보니…
국정원, 보도 전제 처음 공개…탈북자와 간담회도 주선
540명 동시 수용가능…탈북자-위장 간첩 선별 조사
민변 "변호인 주장 반박 위해 공개한 것으로 추정"
- 오경묵 기자
(서울=뉴스1) 오경묵 기자 =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역 사거리에서 차를 타고 50여분간 이동하자 굳게 닫힌 철문이 나타났다. 경기 시흥시에 위치한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고인 유우성(34)씨의 동생 가려씨도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가려씨는 "조사 과정에서 머리를 맞았고 발로 차이기도 했다. CCTV가 설치된 독방에서 지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정원은 '가혹행위' 논란이 계속되자 전격적으로 기자들에게 이곳을 공개했다. 국정원이 보도를 전제로 합신센터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보안목표시설 가급'인 합신센터에 대해 국정원은 지난 2009년 비보도(오프)를 전제로 통일부 출입기자단의 방문을 허용한 바 있다.
서울 대방동에 있던 합신센터는 2008년 12월 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대 들어 탈북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원활한 조사와 보호를 위해 이전했다"는 것이 국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문을 통과하기 전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도 제출했다. 핸드폰이 담긴 서류봉투엔 '보안' 스티커가 붙었다. 이 봉투를 보관함에 넣은 뒤 잠그고 열쇠를 건네받았다. 관련절차를 마치고 버스에 다시 올라타자 닫혀있던 전자동식 철문이 열렸다.
수용된 탈북자들에게 이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가로등마다 태극기가 2개씩 꽂혀있었다. 각 건물 앞에도 태극기가 게양돼 있었고, 본관 앞 잔디에는 작은 태극기를 꽂아 한반도를 형상화했다.
탈북자 54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합신센터는 사무동, 숙소동, 교육후생동 등으로 이뤄져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탈북민이 입국하면 합신센터에서 보호·조사를 받게 된다"며 "진짜 탈북자인지, 위장 간첩이 아닌지 등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2008년 12월 개소 이후 직파간첩 13명이 적발됐고 한국 국적과 지원금을 노린 중국동포·화교도 120여명이나 잡아냈다.
통상적인 경우 조사는 5일여에 걸쳐 진행된다. 이 기간에는 '1인 조사실'에서 조사받고, '1인 생활실'에서 생활한다. 부부가 함께 귀순하더라도 각각 따로 지내게 된다.
다만 10세 미만 아이의 경우는 예외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는 부모가 조사받는 동안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놀이방'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부모가 조사를 마친 이후에는 함께 시간을 보낸다.
5평 규모인 1인 생활실은 '개인 화장실'이 있는 고시원과 흡사한 구조였다. 책상과 의자, 전화기, 침대, 시계, 달력, 샤워시설이 포함된 화장실 등이 있었다. 방에는 CCTV가 없었다. 이 같은 방이 70여개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공간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1인 조사실'은 6평 가량 되는 규모에 컴퓨터 2대, TV 등이 있었다. 탈북 경로를 쉽게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전도'도 걸려있었다.
기본조사 과정에서 대공 용의점, 위장 탈북 등 혐의가 발견되면 좀 더 심층적인 조사를 받게된다. 이 경우 생활공간도 또 다른 1인 생활실로 옮겨진다.
10평 정도 되는 공간에 TV, 비디오 플레이어, 냉장고 등이 갖춰져 있다. 이 방은 조사 공간과도 연결돼있다. '생활 공간'의 바로 옆에서 조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합동조사실도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군기무사령부 등 유관기관과 함께 조사해야 할 때 사용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책상 3개와 컴퓨터 2대가 마련돼있고 TV와 화이트보드도 있다. 가려씨도 이 같은 구조의 조사실에서 조사받았다고 한다. 조사관들이 'ㄴ' 형태로 탈북자를 둘러싸는 구조다.
결핵, 간염 등 전염병을 앓고 있는 탈북자를 조사하는 공간인 '격리조사실'도 있다. 조사관과 조사대상자 사이에 유리 칸막이가 있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이용해 조사하는 곳이다.
조사실에는 기본적으로 CCTV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CCTV 운용 방식을 놓고 국정원 관계자들의 설명이 혼선을 빚었다.
"조사 중에는 전혀 녹화하지 않는다"고 하다가도 "조사가 길어지고 녹화가 필요하면 조사자의 동의를 받고 녹화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했다.
녹화 파일은 3개월간 보존되고 순차적으로 소거된다는 설명이다. CCTV 운용 방식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국정원 관계자는 "원칙이 뚜렷하지 않아 현재 정립하고 있다"고 했다.
조사를 마치면 4~5명이 한 방에 모여 살게 된다. 국정원 관계자는 "지금 현재 탈북민들이 생활하는 곳"이라며 "(운동을 나가) 방을 비웠다"며 실제 생활하는 공간을 공개했다.
TV와 책상, 냉장고 등이 있었다. TV는 지상파채널,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 등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합신센터에는 각종 편의시설도 있다. 내과, 치과, 부인과 등 치료를 위한 의무실도 그 중 하나다. 의사 3명과 간호사 3명, 응급구조사 4명 등이 근무한다. 이곳에서 치료하기 힘든 경우 외부 협력병원으로 후송된다.
장서 1만5000여권 규모의 도서실도 있었다. 주요 조간신문과 잡지도 비치돼 있었고 어린이용 만화·문학·요리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이 있었다.
사회과학 파트에는 '북한·통일·김정일' 섹션이 따로 있었다. '황장엽을 암살하라', '죽음의 수용소에서', '후계자 김정은' 등 도서가 있었다.
탈북자들은 조사를 받는 동안 불편하지 않았을까. 국정원 측의 주선으로 탈북자 5명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조사관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40대 여성 A씨는 "저희도 여기가 국정원이라는 것을 안다. 저희는 조사받는 입장인데 (직원들이) 환대해주셔서 마음에서 우러나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대 여성 B씨는 "제가 어리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반말을 써도 되는데 존대해줬다"며 "불편한 감은 전혀 없었고 아버지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가려씨가 이곳에서 폭행당했다'는 주장이 있다고 하자 40대 남성 C씨는 "(폭행은) 전혀 불가능하다"며 "(이곳의 조사 방식은)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형태다. 조사관들이 존댓말을 쓰고 예절도 있고 겸손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사도 오후 5시 이전에 끝났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다만 이들 중 조사관이 진술내용을 보여준 경우는 1명뿐이었다. 조사 전에 내용을 보여주겠다고 고지한 경우도 2명 뿐이었다. 조사 이후 조사내용에 대해 서명한 것도 1명에 불과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합신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 "안타깝다. 여기서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재판에 나가면 말이 많다"며 "(합신센터가) 이 곳으로 이전한 뒤 5년 동안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자신한다"고 했다.
가려씨가 CCTV가 있는 독방에서 생활한 것에 대해서도 "(심장병력이 있어)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대처하기 위해서"라며 "본인에게 구두로 동의 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번 합신센터 공개와 관련해 "최근 검찰수사를 통해 실체가 드러난 국정원의 간첩 증거조작 범죄행위에 관한 비난여론을 무마하고 합동신문센터내에서 가혹행위를 통해 사건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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