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당원' 위법…소수정당 어디서 후원받나
檢·法 "정치자금법 규정 피하기 위한 편법적 제도"
일반시민 '소액정치자금 기부' 길 사실상 막혀
해당 법 조항 관련 헌법소원 헌재에 계속 중
이른바 '후원당원' 자격으로 진보정당에 당비를 납부한 혐의로 기소된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30일 벌금형을 선고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당원으로서 권리보장과 의무부담이 돼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후원당원을 당원으로 볼 수 없다"며 "(후원당원의 당비 납부는 법에서 정하지 않은 형태로 정당에 돈을 기부한 것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후원당원의 당비 납부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본 판결은 처음이 아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10월에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교조 소속 교사 88명에 대해 벌금형 등을 선고한 바 있다.
문제는 이 판결들로 인해 일반 시민들의 소수정당에 대한 소액정치자금 기부의 길이 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2006년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정당이 개인으로부터 직접 후원을 받는 것이 금지되면서 구 진보신당, 구 민주노동당 등 소수정당들은 이른바 '후원당원' 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는 당원 활동을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정당을 금전적으로 후원하고 싶은 지지자들을 위해 구 진보신당, 구 민주노동당 등 소수정당이 운영해온 제도다.
후원당원은 당원으로서 권리는 행사할 수 없지만 1만~50만원까지 자신이 원하는 금원을 당비로 정당에 납부할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이 지난 2011년부터 "소속 당원으로부터만 당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정치자금법 제4조 규정을 피하기 위한 편법적 제도"라고 칼을 빼어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다시 말해 관련법을 피해 일반 시민으로부터 직접 후원금을 받기 위한 편법적인 제도라고 본 것이다.
검찰의 기소에 이어 법원도 "당원으로서 권리, 의무가 없는 후원당원은 정당법상의 '당원'으로 볼 수 없다"며 후원당원들의 당비 납부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판단해 왔다.
이 때문에 노동당(구 진보신당)은 당규로 규정한 후원당원 제도를 현재 운영하지 않고 있다. 노조, 전교조 등에 정치적인 부담을 안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 노동당 측의 설명이다.
2011년부터 1년간 구 진보신당의 후원당원으로 활동한 대학생 문모씨(24)는 "정당 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지지 정당에 보탬을 주고 싶어 1만원씩을 내는 후원당원으로 활동했다"며 "지금도 노동당에 정치자금을 후원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소수정당들이다.
박은지 노동당 대변인은 "후원당원의 당비 납부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보는 것은 일반 시민들의 소액 정치자금 기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며 "이는 우리같은 소수정당에게 엄청난 재정적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이 있는 정당과 국회의원이 없는 정당 사이의 불균형도 문제다.
법무법인 지향의 박갑주 변호사는 "2006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 정당에 대해서는 당원이 아니라면 자금을 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그런데 국회의원은 후원회를 통해 당원이 아닌 사람으로부터도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어 원내 정당과 원외 정당 사이에 불균형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문제를 전교조나 노조가 아닌 전체 후원당원으로 확대할 경우 문제는 더욱 커진다.
구 진보신당의 경우 일반 시민을 포함한 후원당원이 한때 수백여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과 법원의 법리대로면 이들 모두 모두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박 변호사는 "노조 등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문제를 삼았을 뿐 개별적인 개인들에게까지 검찰이 문제를 삼겠느냐"고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법률이 이를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해당 조항을 완벽히 위헌이라고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법원의 판결이나 검찰의 기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법 조항에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다수의 소액기부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2006년 정치자금법의 개정 취지에 부합한다"며 "현재 이 법 조항은 오히려 건전한 정치자금 기부를 막아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LIG손해보험 노조 위원장 김모씨 등 노조간부 8명은 헌법재판소에 위 정치자금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해둔 상태다.
박 대변인은 "정치자금법 규정은 불온한 거액의 정치자금과 관련된 사건에 적용돼야 할 조항"이라며 "정당은 자발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당원을 조직하느냐는 당에 맡겨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 헌법소원을 함께 제기한 박 변호사는 "정치적 표현을 하는 방법 중에는 정당에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것도 있다"며 "이 조항은 아무런 이유없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치자금 기부에 제한을 두는 것이 아니라 기부된 정치자금의 관리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 세계적인 입법 추세"라며 "헌재에서 적극적으로 심의해서 위헌 결정을 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abilityk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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