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전세사기 '선구제 후회수' 재검토…재원·형평성 논란
과거 거부권에 막힌 법안 다시 수면 위…주택도시기금 부담 관건
회수율 24% 그쳐 실효성 의문…피해 구제 명분 vs 시장 원칙
- 황보준엽 기자
(서울=뉴스1) 황보준엽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이른바 '선구제 후회수' 방식의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과거 국회에서 무산됐던 제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피해자 구제라는 정책적 명분은 분명하지만 막대한 재원 부담과 낮은 회수율, 형평성 논란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만큼 제도 재추진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정부가 먼저 지급하고 이후 구상권을 행사하는 법안이 과거 추진됐지만 실행되지 못했다"며 "관련 내용을 정리해 별도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선구제 후회수 방식은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강하게 추진했던 전세사기 피해 구제 방안이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공공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우선 매입해 피해자를 먼저 구제한 뒤 해당 주택을 경매·공매에 부쳐 비용을 회수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 제도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당시 가장 큰 쟁점은 재원 조달 방식이었다.
정부는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 기금은 서민 주택 구입을 위한 출·융자와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쓰이도록 설계된 자금이다. 사적 계약에서 발생한 피해를 보전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컸다.
당시 국토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약 3만 6000명으로 가정할 경우, 주택 매입 등에 최소 4조 2000억 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로 올해 10월 말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건수는 3만 4000여 건으로, 당시 전망과 큰 차이가 없다.
이미 일부 피해 구제가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필요 재원이 다소 줄어들 수는 있지만, 규모 자체가 획기적으로 감소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주택도시기금의 여유 자금이 빠르게 줄고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기금 여유자금은 10월 말 기준 12조 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말 49조 원이던 여유자금은 2022년 말 28조 8000억 원, 2023년 말 18조 원으로 감소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만 약 6조 원이 더 줄었다. 올해 2월에는 기금 부족으로 기금투자심의위원회가 중단되면서 공공지원 민간임대 사업 등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상황도 발생했다.
회수 가능성 역시 불투명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누적 대위변제액은 4조 4000억 원에 달하지만, 이 중 미회수 금액은 3조 3000억 원으로 회수율은 약 24%에 그친다. 전세사기 주택이 대거 경매 시장에 나오고 낙찰가가 낮아질 경우, 회수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손실을 기금이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형평성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특정 범죄 유형인 전세사기에 대해서만 정부가 직접 보상에 나설 경우,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은 "전세사기 예방과 시장 구조 개선이 우선돼야지, 사인 간 계약에서 발생한 피해를 정부가 전면적으로 보전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다른 유형의 사기 피해와의 형평성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wns83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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