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무너진 주거사다리와 사라진 신뢰
(서울=뉴스1) 진희정 건설부동산부 부장 = "돈 모아 집값 떨어지면 사라." 불과 얼마 전까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던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정작 정부 출범 직후 자신이 보유한 아파트를 팔아 5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그 집에 세입자로 다시 들어갔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이 장면이 남긴 인상은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정책 신뢰의 균열이다. 시장은 정부의 숫자보다 '행동의 진정성'으로 정책을 판단한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은 '투기 차단'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그물망은 투기 세력보다 실수요자를 더 촘촘히 옭아맸다.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갭투자(전세 낀 매매)는 막았지만, 실수요자의 대출과 거래까지 사실상 제한됐다.
집을 갈아타려던 일시적 2주택자들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에 막혀 '양도세 폭탄'을 맞게 됐고, 전세를 끼고 내 집 마련을 시도하던 청년층의 통로도 완전히 닫혔다. 투기를 막겠다는 규제가 결과적으로 '청년의 사다리'를 걷어찬 셈이다.
최근 수도권 주요 분양 단지는 사실상 '현금 전쟁터'가 됐다. 공급을 앞둔 삼성동 '래미안 트리니원' 전용 84㎡ 분양가는 28억 원, 서초동 '아크로 드 서초'나 반포동 '오티에르 반포'도 비슷한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 제한으로 대출은 2억 원만 가능하다. 즉, 나머지 금액은 순수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대출 규제를 통해 집값 안정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현금 여력이 있는 사람만 청약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 청약 시장은 공정 경쟁이 아니라 자본력의 서열표가 돼버린 셈이다.
그 사이 30·40대 실수요자와 청년층은 철저히 배제됐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이유 중 하나가 '집값'이라는 통계는 이제 낯설지 않다. '투기 억제'라는 명분이 정작 세대의 희망을 압박하는 정책으로 변질된 셈이다.
부동산은 규제가 아니라 신뢰와 예측 가능성으로 움직인다. 정책을 설계하는 이들이 먼저 시장과의 약속을 지킬 때만, 국민은 정부의 방향을 신뢰할 수 있다. 이상경 전 차관의 사례가 던진 교훈은 '도덕적 메시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질 때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외면하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갈아타기 수요에 대한 한시적 유연성과 다주택자에게 합리적 세제 인센티브를 부여해 매물을 시장에 내놓게 하는 조치 등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장기 공급 전략도 필요하지만 당장의 거래 절벽을 풀지 않고서는 청년층이 접근할 수 있는 매물은 계속 줄어들 뿐이다. 투기 억제를 명분으로 한 규제가 미래 세대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막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hj_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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