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갭투자 막히고 임차인 면접…사라진 '옥상의 민들레꽃'
- 오현주 기자

(서울=뉴스1) 오현주 기자 = 최근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전세물량이 급감해 '임차인 면접'까지 본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집주인이 급여 명세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했다는 에피소드도 들린다.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전세난의 참상이다. 서울 전역의 갭투자(전세 낀 매매)를 막은 10·15 대책 여파로 전세난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초유의 규제로 무주택 청년과 신혼부부 등 서민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계획은 이미 백지화됐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23일 국정감사에서 10·15 대책에 대해 "최근 시민들의 반응은 실망과 패닉(공포감)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집값 안정화라는 명목 아래 무주택 실수요자까지 옥죈 결과, 곳곳에서 한숨이 나온다. 반차를 내고 우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공인중개소를 전전했지만, 자금 문제로 계약을 못한 사연도 여럿이다.
전셋집 이사도, 내 집 마련도 뜻대로 못하는 주거 이동이 막힌 시대가 됐다. 서울 외곽까지 강남과 같은 규제가 덮치며, 도심의 아스팔트처럼 사회도 점점 식어가고 있다. 정책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할 때, 사람들의 일상은 이렇게 무너진다.
고(故) 박완서 작가는 1979년 소설 '옥상 위의 민들레꽃'에서 집값에 목매는 초고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을 비판하며, 이에 대한 해법으로 '민들레꽃'을 제시했다. 욕심 많은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주인공이 아스팔트 위에서 피어나는 민들레를 보며 희망을 얻는 이야기다.
그러나 슬프게도 지금의 서울 아파트에는 희망의 민들레가 사라졌다. 서울 전역의 주거 이동 사다리를 끊어버린 시대에, 다시 일어설 의지와 온기가 설 자리가 없다.
정책은 시장을 조절하는 수단이지만, 그 시장엔 사람이 산다. 옥상 위 민들레처럼 작고 단단한 희망이 다시 피어나려면, 사람 냄새 나는 부동산 정책부터 돌아봐야 한다.
woobi12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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