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소홀 땐 더 큰 손해"…입찰 제한 경고에 '생존 위기' 호소
[중대재해 트라우마, 건설 흔들-상] 사고 공포에 멈춘 현장
전문가 "징벌만으론 한계…종합 안전 전략 필요"
- 신현우 기자
(서울=뉴스1) 신현우 기자 = 건설업은 200만 개 일자리와 국내총생산(GDP)의 약 14%를 차지하지만, 최근 잇따른 사망 사고로 업계가 위축될 조짐이다. 글로벌 수주 경쟁 심화와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 정부가 안전사고 처벌 강화를 예고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
20일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18일까지 보고된 사망자가 발생한 건설 현장은 118곳에 달했다. 추락·붕괴·깔림 등 이른바 '후진국형 사고'가 대부분이었고, 한 현장에서 여러 명이 숨진 경우도 있어 실제 사망자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코이앤씨·현대엔지니어링·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도 인명 사고가 이어지며 안전 규제 강화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반복적으로 중대재해를 일으키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며 "입찰 자격 영구 박탈과 과징금 부과 등 강력한 제재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절감을 위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면 더 큰 손해를 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지시는 다단계 하청 구조를 개선하고 원청 책임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인 2022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 10곳 중 7곳이 대형 건설사였지만 기소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정부는 건설사에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경제적 제재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이 될 수 있어, 건설사들의 경각심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 임원들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안전 수칙 위반이나 중대재해 발생 시 다양한 경제적 제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대통령 지시와 정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공공 공사 없이 민간 공사 수주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산재를 이유로 입찰 자격을 영구 박탈하면 사실상 회사 문을 닫으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연이은 인명 사고 여파로 건설업계는 위축된 상태다. 포스코이앤씨는 전국 103개 현장의 공사를 중단했고, DL건설은 44개 현장을 멈췄다. DL건설의 모회사인 DL이앤씨도 한때 전국 80여 개 현장을 중단했다가 안전점검 이후 일부 공사를 재개했다.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 교체 후 가덕도신공항 컨소시엄에서 탈퇴하고, 당분간 공공공사 참여를 중단했다. 다른 건설사들도 안전점검을 강화하며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직접 전사적 점검에 나섰다.
공사 중단 사태가 확산되면서 경제적 충격도 현실화하고 있다. 올해 1~8월 기준 부도난 건설업체는 종합 4곳, 전문 6곳 등 총 10곳이다. 업계는 공사비 증가·인력난, 안전관리 비용 확대에 더해 영업정지·입찰 제한까지 겹치면 줄도산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B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거론되는 징벌적 처벌은 사고 발생률이 높은 건설업의 구조적 현실이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아쉽다"며 "원청사 문제는 곧 하청 문제로 이어지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취하는 규제는 오히려 줄도산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국책 연구기관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0%대에 머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안전사고로 공사가 중단되는 사례가 잇따라 건설투자 전망을 크게 낮췄다"며 "경제 성장률 전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징벌적 규제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건설업 특성을 반영한 종합 대책을 주문한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건설업은 옥외 작업, 근로자 고령화, 복잡한 사업 구조 등으로 위험 요인이 많아 예측이 어렵다"며 "산업 차원의 전략과 국가적 안전 정책이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형배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감독관이 민원이나 감사 부담 없이 안전조치 위반 사항을 즉시 시정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설 주무부처 수장도 징벌 중심의 대응만으로는 안전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19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망사고 발생 시 법적 테두리 내에서 분명하고, 단호하게 조치해야 한다"면서도 "문제점을 찾아 징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개선 사항도 결합해 사고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이라고 밝혔다.
hwsh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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