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록 회장 "건축은 문화이자 예술…설계 대가 정상화 시급"

[인터뷰]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민간 업무대가 기준 절실"
"보상 제대로 돼야 창의성도 자란다…심의제 폐지도 필요"

김재록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이 16일 서울 서초구 대한건축사협회 사옥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오현주 기자

건축은 건설(시공)과 다르게 봐야 해요.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문화'이자 '예술'이죠.민간 영역에서도 적정한 업무 대가가 보장돼야 창의성 있는 건축물이 나옵니다.

김재록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은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협회 사옥에서 진행된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민간 설계비 대가 기준 정상화'를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올해 취임 2년 차를 맞은 김 회장은 '건축사의 위상 회복'을 위해 민간 영역에도 적정 대가기준이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 부문에만 적용되던 이 기준을 민간에도 적용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온 결과, 지난해 12월 건축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김 회장은 이를 "변화의 실마리"라고 평가했다.

"민간 설계대가 기준 없어 시장 왜곡…미수금 해결 위해 '대가 지급 보증제'"

김 회장은 "공공과 민간 모두에 적정한 설계·감리 대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이라며 "단순한 수익 구조의 개선을 넘어 건축사의 전문성과 직업적 자긍심을 회복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대가 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공공과 민간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됐지만, (1997년) 자율경쟁이라는 명분 아래 민간 부문에서 대가기준이 사라지며 시장 왜곡이 시작됐다"며 "지금도 민간에서는 여전히 '평(3.3㎡)당 설계비' 같은 비현실적인 기준이 관행처럼 쓰이고 있고, 이로 인해 많은 건축사들이 적정한 보상 없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최근 경기 침체로 심화한 '설계비 미수금 해결'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건축주가 건축사에게 업무를 의뢰할 때, 설계비 지급을 보증하는 '업무 대가 지급 보증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는 "건축 설계는 단순히 '종이 몇장' 그리는 일이 아니라 구조·전기·기계·정보통신·인증 등 수십 개 분야가 통합된 복잡한 작업"이라며 "그럼에도 많은 발주자가 이를 가볍게 보고, 사업이 중단되면 설계비를 지급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설계가 완료됐으면, 사업 중단 여부와 무관하게 보증기관이 미지급 설계비를 대신 지급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자 한다"며 "지금은 설계 난도가 훨씬 높아졌지만, 보상은 제가 설계를 처음 시작했던 1988년과 별반 다르지 않아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김재록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이 16일 서울 서초구 대한건축사협회 사옥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7.16/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시대적 책무 지닌 건축…창의성 존중해야 프리츠커상"

건축사를 사회적 책임이 상당한 존재라고 강조한 김 회장은 "건축은 건설의 한 분야가 아닌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 문화이자 예술"이라며 "획일적인 개발 중심 정책은 도시 소멸과 지역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소멸하는 지방 도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건축사의 스토리텔링과 기획력이 필요하다"며 "건축은 단순한 공간 창조를 넘어 도시 재생, 기후위기 대응, 공동체 회복 등 다양한 사회적 과제에 응답해야 하는 시대적 책무를 지녔다"고 규정했다.

김 회장은 "건축은 거주민뿐 아니라 외부의 시선에도 기쁨을 줘야 한다"는 토머스 헤드윅의 말을 인용하며, 공동체 중심의 건축 철학을 언급했다.

특히 공동체 문화 회복을 위해 골목상권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골목시장이 살아야 점포와 동네 전체가 활기를 되찾는다"며 "과거처럼 3~4층짜리 건물을 여러 개 짓고, 그 옆에서 주민들이 삼겹살에 소주를 즐기던 정겨운 분위기가 돌아와야 하며, 이를 위해 소규모 주거·상업 지역 중심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골목상권 살리려면 규제 완화…K-건축 세계로 나가야"

한국에서도 프리츠커상(건축계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건축사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필요한 건축 심의제도의 철폐가 시급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누군가에게는 빨간색이, 다른 누군가는 노란색이 좋다고 느끼는 것처럼 건축의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라며 "설계자는 해당 부지를 수십 번 방문하고 밤새 고민하며 설계를 완성하지만, 심의위원들은 며칠 전에 서류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건폐율·용적률 같은 과도한 규제의 완화도 제안했다. 그는 "건폐율 등 경직된 규제를 없애야 한다"며 "이러한 규제 때문에 도자기를 만들면서도 밑·윗지름의 규격을 똑같이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국내 건축사보다 해외 건축사가 예외적으로 더 많은 보상과 지원을 받는 현실도 꼬집었다. 그는 "국내에도 훌륭한 건축사 많은데, 이들을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건축사협회는 올해 9월 인천에서 '아시아 건축사 대회'를 개최하며 K-건축의 세계화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원전·공항·철도·도로 인프라에 이어 도시 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K-건축’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건축은 감성과 사회적 맥락이 반영되는 예술 작업으로,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분야"라며 "건축사들이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재록 대한건축사협회장 프로필

△1959년 경북 영천 출생 △건국대학교 건축공학 학사 △청구건축사사무소 대표 △전국 학교운영위원회 연합회 부회장 △서울특별시 장애인 체육회 이사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 △서울특별시 재향군인회 부회장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중앙이사 △대한민국 R.O.T.C 중앙회 부회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 서울회장 △ 前 전국 17개 시·도건축사회장 협의회장 △前 서울특별시 건축사회 회장 △現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 대담= 진희정 건설부동산부 부장, 정리=오현주 기자, 사진=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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