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대책에도 아파트값 안 잡히는 이유 [박원갑의 집과 삶]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 요즘 서울과 수도권 주택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른다. "생각보다 맷집이 세다." 6·27 대출 규제, 9·7 공급 확대 대책이 잇달아 나왔지만 아파트값 상승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8월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9월 들어서는 그 속도가 더 가팔라졌다.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지표 역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은행의 9월 주택가격전망 소비자심리지수(CSI)는 112로, 전월(111)보다 1포인트 상승했다. 두 달 연속 오름세다.
과거에는 대책이 발표되면 매매가격과 거래량이 곤두박질쳤지만, 요즘은 양상이 다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개인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주택시장 체질의 변화다.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저층 재건축 아파트가 시장의 흐름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층 일반 아파트가 중심이다. 서울에서는 송파구 잠실의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단지가 사실상 시장의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다. 장기 실거주 목적의 수요가 주도하다 보니 고강도 대책이 나와도 시장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 조정 국면에 들어가더라도 '가격 조정'보다는 거래만 둔화하는 '기간 조정'이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 통화량 증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M2(광의통화)는 4344조 3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가세도 4개월째 이어졌다. 전년 동월 대비 M2 증가율은 7.1%에 달한다. 부동산은 본질적으로 화폐 현상의 성격을 띤다. 돈이 풀려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을 피하려는 수요가 현물자산인 부동산으로 몰린다.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쉽게 식지 않는 것은 재정지출 확대와 주식시장 랠리에 따른 유동성 팽창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내 집 마련 수요자의 조바심이다. 언론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나 추가 규제를 예고하면서, 그 전에 집을 사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 실제로 토지거래허가구역 0순위 후보로 꼽히는 서울 성동구와 마포구의 거래량은 9월 들어 크게 늘었다. 특히 이들 지역에서는 추석 연휴 이전이 막판 아파트 '갭투자'의 기회라 보고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아파트를 매입하려면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택시장과 정부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6·27, 9·7 대책은 정부가 "지금은 사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거래량·가격·심리지표는 모두 그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인다. 결국 정부와 시장 간의 힘겨루기가 또다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과 수도권 주택시장의 첫 분수령은 추석 연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명절에는 친인척끼리 부동산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잦다. 우리 사회에서는 모르는 사람보다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친인척의 입소문과 이야기가 주택 구매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추석 연휴 이후에도 주택시장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정부는 규제지역 지정이나 추가 대출 규제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시기는 10월 중순~11월쯤이 될 것으로 보이나 시장 흐름에 따라 빨라질 수도 있다. 마포구와 성동구 같은 급등지역은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일 수 있다. 경기도 분당과 과천 역시 규제지역 후보로 거론된다.
만약 이 같은 조치에도 시장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연말이나 연초에는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 등 세제 개편이나 전세 대출의 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DSR) 적용 같은 추가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시장의 과열 정도에 따라 정부의 규제 수위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시장이 비이성적 과열로 치닫는다면 한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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