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문 50개 교체해야…물건 보관할 창고도 못 늘리는 산단"

대한상의, 규제합리화 과제 규제합리화추진단에 139건 건의
"어린이 타이레놀 4년째 생산 중단, 주총 우편만 매년 1억장"

대한상공회의소 전경 (대한상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4.17 ⓒ 뉴스1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이 규정은 당기는 문으로, 저 규정은 미는 문으로. 어디에 맞춰야 할까요

#. 고압가스를 다루는 A 사는 산업안전 점검에서 지적 받아 50여개에 달하는 문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A 사는 고압가스 안전관리 규정에 따라 출입문을 안쪽에서 당기는 형태로 설치했다. 하지만 산업안전 관리 규정에는 신속한 탈출을 위해 문을 바깥쪽으로 밀어서 열도록 하고 있다.

기업들이 꼽은 불합리한 현장 규제의 대표 사례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민관합동 규제합리화추진단에 '기업현장의 규제합리화 과제' 139건을 제출했다고 29일 밝혔다. 건의서는 국민생활과 기업현장의 불합리한 애로와 미래 성장을 위한 제도개선 과제 등을 담았다.

건의서에 따르면 A 사 사례처럼 규정이 서로 충돌하는 것은 물론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도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 대구의 한 산업단지에 입주한 B 사는 주문이 늘어 기존 창고만으로 제품보관이 어려워지자 단지 내 유휴공장을 창고로 임차하려 했지만 제조시설도 늘려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산업단지 산업시설구역에는 원칙적으로 제조시설과 부대시설의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제조시설 없이 창고만 단독 설치하거나 별도 필지에 창고를 설치할 수 없다.

B 사 관계자는 "산업단지의 제조 기능을 지키자는 취지지만, 기업의 생산 확대와 수요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오히려 빈 공장을 방치하고 기업의 물류비 부담을 키운다"며 제조시설을 운영 중인 입주기업이 자사 완제품 보관 용도로 추가 창고를 활용하는 경우, 기존 공장의 부대시설로 인정해 달라고 했다. 또한 성수기나 수출물량 급증기에 한시적인 임차를 허용하거나, 장기적으로 산단 내 공동 물류창고를 조성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불편 해소를 위한 민생규제도 건의서에 담았다. 정부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나 공휴일에 24시간 편의점에서 상비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 중인데 13개 편의점 상비의약품 중 어린이용 타이레놀 80㎎과 타이레놀 160㎎은 지난 2022년부터 4년째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국민 편의와 기업경영의 디지털화 측면에서 지속해서 제기된 주주총회 소집통지의 전자화도 건의에 포함됐다. 상법상 주주총회 소집통지는 서면 통지가 원칙이고, 주주의 사전 동의가 있는 경우만 전자고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전 동의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가 규정돼 있지 않고 전자통지를 위해 개별적으로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기도 어려워 현실적으로 대부분 우편으로만 이뤄진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내 상장사에서 매년 발송하는 주주총회 종이우편만 1억장"이라며 주주명부에 이메일 등을 기재하도록 절차를 마련하고 전자통지를 원칙적으로 허용해 주주 편의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이격거리 기준의 선제적 정비도 건의에 포함됐다. 기업들은 지자체 자율 권한은 유지하되, 중앙 정부 차원에서 이격거리 설정 시 참고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을 제시해달라고 했다.

'국가전략기술에 전문연구요원 활용범위를 넓히자'는 주장도 담았다. 기업들은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대기업 부설연구소에도 전문연구요원 배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밖에 화물용 승강기에 물류센터용 고중량 이동로봇이 탑승할 때 일반 승강기 기준이 적용되는 문제를 개선하는 과제, 경기도의 섬유·염색업 중심 산업단지에 세탁업종의 입주를 허용하는 과제 등이 제시됐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성장본부장은 "규제합리화위원회가 역대급 규모로 출범하고, 규제합리화추진단 운영이 본격화하는 만큼 기업들의 기대도 크다"며 "대한상의는 AI 규제지도 시스템, 규제샌드박스 등을 통해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현장애로를 발굴하고, 새로운 설루션을 제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goodday@news1.kr